첫 페이지 |  imymemine |  블로그 아카이브 |  끄적끄적 |  지난 게시판 |  자유게시판    


  끄적여온 글들 (짧은 것)  




[ 담뱃불 붙여주기 ]

처음부터 여자의 말은 반 정도가 반말이었다.

*

"그래서? 당신이 한 방 먹이기라도 했단 말이야?"

나는 말을 조금 더듬으며 오른발을 바깥쪽으로 벌려놓았다.

"아니, 뭐, 그렇진 않았지만……"

여자는 건방져 보이지만 꽤나 귀엽게 피식 웃으며 남은 잔을 비웠다. 바텐더를 불러 한 잔을 더 주문했다.

"그럴 용기도 없으면서 이렇게 뒤에서 종알종알 대기나 하구. 당신을 처음 보는 자리이긴 하지만, 당신답지 않아 보이잖아."

"네?"

"당신답지 않다구. 난 한 번 보면 알거든."

여자는 가느다란, 그러나 마디가 예쁘지는 않은, 손가락을 튕겨 내 잔을 한번 쳐냈다. 얼음이 잔에 부딪히는 소리가, 살짝, 났다.

"한 번 더 해보는 거야, 한 번 더. 알았죠?"

"아, 네……"

"난 한 번 해보고 나서 좌절하는 정도의 사람이랑은 이렇게 나란히 앉아서 시간 때우고 싶지 않거든. 그러니까, 내 시간을 허튼 것으로 만들지 말아 줘요."

바텐더가 주문한 것을 가지고 왔다. 여자는 잔을 한번 들었다 놓더니 내 눈을 살며시 바라봤다. 실내가 어두워서 잘 보이진 않았지만 눈에 띌 정도로 눈동자가 커 보이는 여자였다.

"이봐요."

"네?"

"담뱃불 좀 붙여줘요."

나는 갑작스레 공손해진 여자의 말투와 그 내용에 잠시 당황해하고는 여자가 건네어주는 정체불명의 금속제 라이터를 들었다. 찰칵 소리가 나면서 불이 크게 올라왔다. 순간 여자가 고개를 살짝 옆으로 돌렸다. 그와 동시에 순간적으로 내민 여자의 하얀 손이 라이터를 든 내 손을 살짝 쳐냈다.

"깜짝 놀랐잖아. 눈썹 탈 뻔했네."

하지만 전혀 놀란 목소리는 아니었다. 나지막하고 차분했다.

"미안해요, 미안해."

그러자 여자가 눈을 한번 찡그리며 말했다.

"솔직히 말해봐요. 담뱃불 처음 붙여보죠?"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곧 여자는 처음 내게 다가올 때처럼 피식 웃으며 내 말을 끊었다.

"한 번 더 해봐요. 한 번 더. 나, 지금, 담배 정말 필요하니까."

*

여자는 처음부터 반 정도는 반말이었고, 내 오른발은 바깥쪽을 향하고 있었으며, 잠시 후에 나는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2004년, Written by bluemoon.)



[ 친절 공무원 김 씨의 조그마한 비극 ]

친절 공무원 김 씨는 지방행정직 9급의 평범한 동사무소 공무원이다.

친절 공무원 김 씨는 평범하게 생겼다. 170센티미터가 조금 넘는 키, 짧지만은 않은 머리에 헤어젤을 잔뜩 발라 삐죽 세운 머리, 그리고 적당히 그을린 피부. 습관적으로 자세가 굽어서 그렇지 사실은 괜찮게 벌어진 어깨와 곧게 서 있는 척추, 조금 작아 보이긴 하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엉덩이까지.

친절 공무원 김 씨는 말 그대로 정말 친절하다. 최근에는 누군가 인터넷 게시판에 친절 공무원 김 씨의 친절함을 칭찬하여 친절 공무원 상도 탔다. 가끔 동사무소 앞 아파트에 사는 할머니들이 젊은이가 참 싹싹하다며 이런저런 간식거리도 일부러 챙겨줄 정도이다.

그런 외부 평판만큼은 아니지만 동료 공무원들에게서도 좋은 소리를 많이 듣는다. 실제로 귀찮거나 생소한 업무도 가리지 않고 능숙하게 처리하는 수완이 있어 모든 업무의 대직에 적합한 동료로 꼽히고 있다.

오늘도 친절 공무원 김 씨는 동사무소에서 민원업무를 처리하고 있다. 동료가 점심식사를 하러 간 사이에 주민등록 등초본부터 인감업무까지 해주고 있다. 주민등록 등초본은 대직자도 아니면서.

저편에서 민원인 한 명이 나타난다. 조금 험하게 생긴 아주머니다. 동네 아주머니다운 파마 머리에 동네 아주머니다운 꽃무늬 남방을 입고 동네 아주머니같은 립스틱을 칠한 모습이다. 사실은, 좀 험하게 생긴 눈매다.

어서 오세요, 무얼 도와드릴까요. 친절 공무원 김 씨는 나름대로 활짝 웃으며 민원인을 맞는다. 호적 등본 한 통이요. 아주머니의 말에 친절 공무원 김 씨는 옆자리를 바라본다. 호적 등초본이 발급되는 옆자리에는 아무도 없다. 화장실에 가셨나. 친절 공무원 김 씨는 조그맣게 중얼거리면서 옆자리로 옮겨 앉는다.

누구 것이 필요하신 거죠? 우리 애기 아빠하고 저하고 같이 나온 거요. 네, 신분증 먼저 보여주세요. 주민등록증을 건네어 받은 친절 공무원 김 씨는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려놓는다. 본적이 어떻게 되시죠? 본적이요? 그거 알아와야 되는 거예요? 거기에 주민번호 넣으면 자동으로 다 알아서 하는 거 아니에요? 친절 공무원 김 씨는 그런 게 아니라며 짧은 설명을 해 본다. 그렇지는 않아요. 본적지는 또 다른 방법으로 알아봐야 하거든요. 아… 그럼… 저기… 서울 구로구 어디쯤 되는 거 같은데… 잠시만 기다리세요, 제가 확인하고 알아봐드릴게요. 친절 공무원 김 씨는 능숙하게 키보드를 두들겨 본적지를 확인한다. 시스템에 본적지 주소와 아주머니의 개인 인적사항을 입력한다.

그런데 동사무소가 왜 이리 더워요? 여름인데 에어컨도 안 켜나, 민원인들 더워 죽겠네. 아주머니는 투덜거리며 짜증난다는 표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하지만 친절 공무원 김 씨는 살짝 웃어 보인다. 좀 그렇죠? 민원인들께서 더우시다니 에어컨을 좀 더 세게 틀어야겠네요. 죄송합니다. 아참, 호적 등본 몇 통 필요하신 거죠? 한 통만 줘요, 빨리 가봐야겠네. 아주머니는 수수료를 내고 인증을 하는 친절 공무원 김 씨의 작업이 끝나기도 전에 손을 내밀어 재촉한다.

아, 늦어서 죄송합니다. 제 업무가 아니라서 좀 서투르네요. 친절 공무원 김 씨는 씨익 웃어 보이면서 호적 등본을 내민다. 거스름돈과 신분증을 아주머니에게 건네어 주다가 신분증을 한번 바라본다.

어, 주민등록증이 많이 휘어있네요. 친절 공무원 김 씨의 말에 아주머니는 별거 아니라는 듯이 대답한다. 지갑을 세탁기에 넣고 돌려버려서 그래요. 제가 펴 드릴게요. 친절 공무원 김 씨는 휘어있는 신분증을 펴려고 반대방향으로 구부려본다. 그 순간.

뚝, 하는 소리와 함께 주민등록증이 정확하게 반으로 부러져버린다. - 엇.

친절 공무원 김 씨는 순간 당황하여 조심스레 아주머니의 눈치를 살핀다. 아주머니는 상황을 한 박자 늦게서야 파악하고 신경질적으로 눈살을 찌푸린다. 뭔가 말하려는 참이다.

저편에서 호적 등초본을 담당하는 동료 공무원이 자리로 돌아오고 있다. 친절 공무원 김 씨는 부러진 주민등록증과 아주머니의 매서운 눈빛과 다가오는 동료의 발끝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다시 한번 중얼거린다. 엇, 하고.

(2004년, Written by bluemoon.)



[ 고양이를 만났다 ]

이른 새벽이었다. 아직 동도 트지 않아, 하늘 저편에서 빌딩 불빛이 검푸른 기운만을 내뿜고 있을 정도로 이른.

학교 기숙사에 살고 있던 나는 새벽부터 일어나서, 그 이른 시간에, 도서관을 향해 가던 길이었다. - 그렇다고 해서 특별히 도서관에서 해야할 일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아침부터 저절로 눈이 떠지길래, 다시 잠도 안 오고 해서, 샤워를 하고 팩에 든 우유도 한 잔 마시고, 가방에 소설책이며 휴대용 CDP며 이런저런 잡동사니들을 담고 무작정 도서관으로 향한 것이었다.

"어이, 친구를 봤으면 아침인사 정도는 해야 하는 거 아냐?"

깜짝 놀라서 뒤를 돌아보니, 고양이 녀석이 방금까지 쓰레기 종량제 봉투를 뒤적거리던 모습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회색 털에 검은 줄무늬가 등을 좌우로 가로질러 나 있는, 예전에 어디선가 본 적이 있던 그 모습으로. 하지만 나는 잠시 녀석이 누구인지를 생각해봐야만 했다.

"아, 너는..."

"그래, 임마. 나야, 나. 놀랐지?"

녀석은 두어 발을 두 발로 걷더니 다시 네 발로 걸어 내 앞까지 다가왔다. 새벽인데도 녀석의 눈은 초롱초롱했다.

"오래간만이야, 친구."

"으, 으응..."

적지 않게 당황한 나는 뭐가 잘못되었길래 이 녀석이 여기에 있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3년 만의 재회가 아니던가.

"흰토끼가 말해주더군, 작년 겨울에 널 여기에서 봤다고. 새벽에 학교 부근에 가보면 만날 수 있을 거라고 하길래 벌써 사흘째나 기다리고 있었단 말야."

"아, 흰토끼..."

분명히 작년 늦가을이나 겨울 -늦봄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다지 인상적인 사건이 아니었단 말이다.- 에 흰토끼를 만난 적이 있었다. 그때도 이 정도로 이른 시각이었는데. 도서관 가는 길의 약대 건물 앞에서 껑충껑충 뛰어오더니, 인사도 없이 씨익 웃기만 하고서 그대로 사라져 버린 일이 있었던 것이다. 그다지 친한 녀석이 아니어서 금새 잊고 말았지만.

"아, 그런데 무슨 일이길래 날 만나려고 사흘이나 기다린 거야? 아직 날도 추운데, 이 새벽에."

그러나 고양이 녀석은 앞발로 뺨을 슥슥 긁더니 정말로 졸린 듯 하품을 크게 하고 나서야 대답을 했다.

"새들이 한번 보재. 나 때문에 너랑 헤어졌으니 나더러 다시 데려올 책임이 있다더군. 솔직히 귀찮은 일이지만, 분명 내 책임이 있긴 하니까 내가 직접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구."

"아, 그래?"

"네가 보고 싶었다구, 게다가."

"눈물나게 반갑네, 이거."

난 진심 반 거짓 반의 말을 내뱉었다.

마침 동이 터 오기 시작했다. 구름이 가득 찬 하늘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좋아, 가서 알려. 조만간 찾아가겠다고. 아직 잊은 게 아니라고. 그러고 보니 나도 녀석들이 많이 그립기는 한 걸. 물론 너도 보고 싶었구."

"마지막 한 마디가 제일 듣기 좋은 걸."

그리고 나서 녀석은 근처 자판기에서 따뜻한 캔커피(나는 캔녹차)를 사서 그것으로 언 손을 녹이며 나와 같이 도서관 쪽으로 향했다.

"아참, 아까 쓰레기는 왜 뒤지고 있었냐?"

"응? 아, 그거? 습관이야, 그냥 새로 생긴 습관. 3년이나 흘렀으니 고양이도 좀 바뀌는 게 당연한 거 아냐?"

"뭐, 듣고 보니 그렇기도 하군."

캔 뚜껑을 땄다. 딱, 소리가 새벽기운을 탔다. 건배도 위하여도 치어스도 -당연히- 없이, 우리는 각자의 음료수를 마시기 시작했다.

(2002년, Written by bluemoon.)



[ 멋진 크리스마스 - 패러디 : remember the time, 1997 ]

날이 추웠다. 바람은 없었고 눈부신 햇살이 머리 위로 부서져내렸다. 하지만 추웠다. 서로 이마를 맞대고 있으면 그대로 붙어버릴 것 같을 정도로.

"춥지?"

"응."

내가 묻고, 친구가 대답했다. 그리고 한동안 말이 없었다.

바람막이도 없는 버스 정류장, 파란색 정류장 안내판 기둥에 둘이 기대어 서있었다. CD플레이어 이어폰을 한 쪽 씩 나누어 끼고 있었다. 'cavatina'가 흘러나왔다. 순전히 내 취향이었다. 녀석은 이런 쪽은 깜깜이다.

"야."

녀석이 오랜 침묵을 깼다.

"왜?"

"버스 안 온다. 추우니까 어디 한 바퀴 돌고 오자."

추우니까 좀 가만히 있어야하는 것 아냐, 라고 말하려다가 관뒀다. 오늘 아니면 또 언제 다시 보게 될지 모르는 친구의 그 말을, 그냥 넘겨버릴 수가 없었다.

그때 우리와는 상관없는 버스 한 대가 휭 하고 곁을 지나갔다. 찬바람도 함께 휭 하고 지나갔다. 나는 몸을 한번 부르르 떨고는 대답했다.

"그러지, 뭐."

거리는 온통 크리스마스 분위기였다. 음반가게마다 '징글벨'이라든지 'Let it snow', '고요한 밤 거룩한 밤' 같은 캐럴이 흘러나왔다. 팬시점도 크리스마스 카드를 고르는 중고등학생들로 가득했다. 수많은 교복들 틈에 선 조그마한 크리스마스 트리가 기묘해 보였다.

"어김없이 올해도 크리스마스가 왔네."

이번에도 녀석이 먼저 침묵을 깼다.

"그렇네."

"...메리 크리스마스."

"응?"

나는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 아직 일주일도 더 남았다구, 크리스마스는.

"메.리. 크.리.스.마.스. 당일 날 못 할 테니 미리 들어두라구. 내년 것도 들려주랴?"

"참 내. 내년엔 전화로 해주는 게 어때?"

"웃기네. 돈 아까워, 임마."

녀석은 유학을 간다고 했다. 군 제대하고 반년도 채 안 지나서였다. 크리스마스는 가족들과 친구들과 보낼 것이지 왜 학기 시작도 전에 가서 홀로 크리스마스를 보내려는 건지(그것도 여자친구와 헤어지면서까지) 잘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나는 뭔가 잘 해보려고 시작하는 사람을 말릴 성격은 아니다.

"잘 지내라."

녀석이 툭 내뱉은 말과 동시에, 나는 너무 추워서 다시 한번 몸을 부르르 떨었다.

"가기 전에 전화라도 한번 더 해."

"웃기네. 너랑 나랑 그 정도로 친하냐?"

맘 상하라고 던진 말이었을텐데, 괜히 전혀 그런 기분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 말을 한 녀석의 마음이 더 휑하였을 것을.

길가 1층 카페에서 창 밖으로 걸어놓은 큰 인형이 산타 복장을 하고서 빙긋이 웃고 있었다. 크게 박혀있는 검정 두 눈은 찬 햇살에 반짝였다.

"난 그냥 이렇게 간다만, 넌 어떻게 할거냐?"

코트 주머니에 두 손을 쿡 집어놓은 채,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불쌍한 고시생 같으니. 벌써 겨울이 몇 번째냐. 옆에서 보기 안쓰럽다야."

나는 한숨처럼 길게 숨을 내뱉었다. 입김이 공기 중으로 하얗게 번져나갔다.

"이미 익숙해졌지. 안 그러면 이상할 정도로."

"등신."

정답을 말한 자신이 자랑스러운지 녀석이 흐흐하고 웃어댔다. 나도 쑥스럽게 따라 웃었다. 등신, 이라. 정말 오래간만에 듣는 말인걸.

"여자 친구랑도 잘 지내야 되는 거 알지, 나 없어도?"

나는 아직도 조그맣게 웃어대다가 그 말이 끝나자마자 대답했다.

"어이가 없네. 네가 우리한테 뭐 해준 게 있다구."

"둘 사이 훼방 안 놓았으니 큰 도움이지."

녀석이 다시 흐흐하고 웃었다. 추운 날씨에 적격인 웃음소리다.

"당연히 잘 지낼 거야. 앞으로 몇 달은 지금보다 더 힘들겠지만"

"미안하지?"

"누구한테?"

"너, 바보냐?"

나도 그만 피식 웃어버렸다. 당연한 거다, 녀석. 무사히 올 겨울을 넘기면 내년엔 고시도 합격하고 나 뒤늦은 군대도 갔다오고 네가 돌아올 때까지 잘 지내고 얼른 결혼해서 아들딸 열 댓 명씩 낳아서 양가 부모님께 효도하고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 거다, 라고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나처럼 곁에서 휭하고 떠나지 말고, 겨울엔 손 차가울테니까 같이 다닐 땐 손 꼭 잡아주고."

"알아, 알고 있어. 걱정 마셔."

사실은 그 모든 게 쉬운 일이 아니라서 올 겨울이 힘들 거라는 사실은, 녀석도 지켜봐와서 알고 있을테니 굳이 할 필요가 없었다. 게다가, 홀로 떠나는 녀석이 갑자기 더욱더 서글퍼보였다.

어느새 버스 정류장에 다시 돌아와 있었다. 정류장 곁 빵가게에서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흘러나왔다. 녀석은 빵가게 창에 바싹 붙어 안을 들여다보며 '아임 드리밍 오브 어 화이트 크리스마스-'하며 어설프게 캐럴을 따라 불렀다. 노래가 끝나고 나서도 혼자 반복해서 반복해서.

곧 버스가 저 멀리서 보여왔다. 녀석은 한쪽 이어폰을 빼내어 내 빈 귀에 직접 끼워주고는 코트 주머니 밖으로 내 손을 꼭 잡았다. 그리고는 씩 웃어보이며 말했다.

"내년엔, 너도 나도 올해보다 더 멋진 크리스마스가 되길."

버스가 멈춰 섰다. 녀석은 휙 하고 몸을 버스 안으로 들이밀더니 잠시 뒤를 돌아봤다. 나는 싱긋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메리 크리스마스."

그리고... 내년 것, 혹시나 모를 그 이후의 것들까지. 메리 크리스마스, 메리 크리스마스.

이윽고 버스가 겨울 먼지를 털어내며 떠나갔다. 순간 목 위로 뭔가 차가운 것이 떨어져 눈인 줄 알았는데 더 이상 아무것도 떨어지지 않았다. 햇살만 차가웠다. 이어폰을 통해서는 'when you wish upon a star'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마치 캐럴처럼.

(2002년, Written by bluemoon. '멋진 크리스마스'(1997)의 자가 패러디)



[ 종이비행기 ]

- 1 -

어느 봄날이었다. 구태의연한 수식조차 필요치 않을 정도로 그렇고 그런, 평범하고 무난한 상상 속의 봄날.

버스 안에서 껌을 씹고 있었다. 창 밖에서 들어오는 봄햇살에 얼굴을 있는대로 찌푸려가면서 껌을 씹고 있었다. 그러다가 손에 들린 껌종이가 눈에 들어왔다.

문득 종이 접기가 하고 싶어졌다.

구겨져 있던 껌 종이 한 장을 잘 펴서 종이 배 하나를 만들었다. 그리고는 나머지 한 장-껌은 보통 두 장의 종이로 싸여져 있다-으로 종이 비행기를 만들려고 일단 반으로 접었다.

반대편 창가에 앉아있던 아주머니가 스윽하고 눈길을 주더니 피식하고 웃어보였다. 나이깨나 먹은 사람이, 하는 상투적인 표현으로 시작되는 그 무슨 말인가를 속으로 중얼거렸을테지. 혹은, 세상 참 여유롭게 사는 사람이네, 라는 생각을 했을런지도 모른다. 나는 잠시 종이 접기를 멈추고 창 밖을 바라보았다. 해가 높은 빌딩들에 가려져 있었다. 그 그늘 속으로 가느다란 한숨을 내뱉었다. 후, 하고.

*

요사이 주변의 몇 가지 일들이 꼬여 있었다. 우선 오랫동안 준비해온 자격증 시험에서 떨어졌고 어머니의 병은 악화되어가고 있었으며 3년 간 사귀어온 여자친구와도 헤어졌다.

하기야 시험이야 다시 보면 된다. 어머니의 병도 당장 돌아가시거나 심한 고통을 수반하는 것도 아니다. 여자친구는, 지금 생각해서 그런 것이겠지만, 없어도 그만이다. - 따지고 보니 앞으로 내 수고가 더 필요한 일은 시험 정도인가.

하지만 문제는, 뭐는 되고 뭐는 안 되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당장 무얼 어떻게 정리하고 무얼 어디서부터 새로 시작해야 하는 것인지, 그래서 내 생활을 무슨 방법으로 다시 끼워맞춰야하는 것인지 감이 오지를 않았다. 바닥에 흩어진 천 피스 이천 피스의 퍼즐처럼.

*

더 이상 생각이 나지 않았다, 이 종이비행기마저도 어떻게 접어야 하는지. 그렇게 한참을 생각하다가 창 밖을 바라보니 비둘기로 보이는 새 몇 마리가 하늘을 날아다니고 있었다.

- 2 -

고등학교 때, 새 학년이 시작되면 막 대학 입시를 앞둔 3학년 학생들이 4층인 교실의 창 밖으로 종이비행기를 날리던 학교 풍습이 있었다. 뒤뜰로 난 창가에 성적여하를 막론하고 우르르 달라붙어, 쓰던 연습장이나 아침에 학교 오는 길에 받아온 광고 전단지 혹은 모의 고사 시험지 등을 접어 날려, 멀리 날아가면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다는 마음으로 자꾸만 날려보내던 종이비행기.

*

그 날도 파란 하늘에서 조용히 내리쬐는, 햇살의 은근한 따뜻함 때문에 미안해서라도 유리창이 깨끗하게 반짝여줄 것만 같이 좋은 봄날씨였다. 종이 비행기 날리기 열풍도 이제는 잠잠해지고, 학교에 나온 아이들은 나름대로의 계획에 따라 자율학습을 하고 있는 일요일 오후였다.

반편성 후 단 한번도 얘기를 나눈 적이 없는 한 녀석과 나는 창가 쪽의 자리에 앞뒤(내가 앞, 녀석이 뒤)로 앉아 나란히 종이비행기를 접고 있었다.

"난 말야,"

녀석이 느닷없이, 그러나 조용히 말을 꺼냈다.

"이렇게, 오늘처럼 아무도 안 날리게 되면 날리고 싶었어."

그제서야 뒤를 돌아본 나는 돌아본 채 종이비행기를 마저 접으며 씨익 웃었다.

"거 참 이상한 성격이네."

그러자 녀석은 다 만든 종이비행기를 잡고 나를 향해 몇 번 날려보는 시늉을 해보였다, 조금은 위협적으로. 뾰족한 그 끝이 근사해보이는 녀석이었다.

"난 혼자 날려보고 싶었다구."

난 창 밖을 슬쩍 내다봤다.

"밖을 좀 봐라. 몇 개 떨어져 있는 걸. 아직도 애들은 날리고 있다구. 그 말대로라면 너한텐 아직도 이른 거 아냐?"

"아무튼. 난 그런 세세함까지는 신경 안 써."

과연 그렇군. 융통성 있는 녀석인데, 하고 나는 생각했다. 그리고는 완성된 종이비행기를 들고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창 밖을 향해 몸을 돌리자, 그 녀석도 녀석 쪽에 드리워진 에메랄드색(아직은 학기초라 깨끗한) 커튼을 걷고 창 밖을 내다봤다. 눈부신 햇살이 교실 안으로 몰려들어왔다. 공부하던 몇몇 녀석이 눈살을 찌푸리며 추리를 바라봤다. 그러나 이내 그냥 이해해준다는 표정으로 제 할 일들을 계속했다.

"관제탑, 관제탑. 여기는 민간 항공기 IE0308. 비행하기에 너무 좋은 날씨입니다, 로저."

로저, 라니. 오버, 로 마쳐야 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녀석의 급작스런 송신에 나는 아무런 대답없이 종이비행기만 만지작거렸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냐?"

로저로 송신을 마친 녀석이 갑자기 다시 질문을 던지자, 나는 조금 놀란 기색으로 엉겁결에 대답했다.

"뭘?"

그러자 녀석은 종이비행기를 잡고 뒷뜰 어딘가를 조준하면서 말을 계속했다.

"만약에 내가 저 어딘가- 예를 들어 뒷뜰에 끝의 저 세번째 미루나무 근처, 물론 거기까지 날아갈리는 없지만 말야-에 내 비행기를 날려보내겠다 결정했다고 해. 그리고 우연히, 아주 우연히 거기까지 날아갔다고 해 보자구."

"우연히."

난 그 말을 다시 강조하며 녀석의 말에 호응했다. 거기까지면 족히 3, 40 미터는 되지 않는가. 녀석이 들고 있는 것은 고무동력기 같은 게 아니란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목적지까지 날려보낼 수는 있지만, 이동경로까지 맘 먹은대로 할 수는 없잖아? 그러기엔 바람이라든지 햇살이라든지 하는 변수가 너무 많아."

햇살? 난 피식 웃으며 맞받아쳤다.

"비둘기가 채어갈지도 모르고."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는 하지 말구."

그러더니 녀석은 자신의 종이비행기를 힘껏 날려보냈다. 비행기는 햇살과 봄공기를 가르며 높이 치솟아 올라, 길고 크게 한 바퀴를 돌더니 방향을 잡고 강하했다. 그리고는 그 세번째 미루나무 바로 밑에 안착했다.

"착륙. 관제탑,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로저."

녀석은 커튼을 내리고 제자리에 앉았다. 필통 안에서 이런저런 필기구들을 꺼내어 다시 공부할 준비를 했다.

나는 잠깐 동안 녀석이 날려보낸 종이비행기를 바라보다가 내 것을 날렸다. 원하는 곳, 원하는 착륙 지점(물론 그 미루나무 밑 같은 곳은 희망하기에 무리이고.)을 생각하며.

그리고 내 비행기는 '바로 그곳'은 아니지만 평범하고 무난한 곳에 조용히 내려앉았다. 평범하고 무난한 곳에 조용히.

조금도 망설임 없이 창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봄공기를 느껴봤다. 봄햇살이 덤으로 느껴졌다, 따스하게. 종이비행기야 어떻게 날고 어디에 내리면 어떠랴. 나는 그와 상관없이 열심히 책이나 파게 될텐데.

그때 옆 창으로 녀석의 얼굴이 불쑥 등장했다, 조금은 놀랄 정도로 불쑥. 그리고는 기분 좋은 소리를 한 마디 툭 던졌다.

"야, 배고프지 않냐? 나가서 뭐라도 좀 먹지 않을래? 나가자, 내 한 턱 내지. 부실한 비행기는 잘 날지도 못한다구."

나는 녀석의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좋아, 좋아."

*

결과적으로, 나는 평범하고 무난하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평범하고 무난한 대학에 들어가 평범하고 무난한 생활을 하게 되었다.

*

그 녀석은 그 해 가을, 가랑비 내리던 어느 날 저녁의 자율학습 시간에, 4층 교실의 맨 뒤 창 밖으로 뛰어내려 병원에 실려갔다. 마치 제 자신이 종이비행기인 양 뛰어내려. 녀석이 종이비행기를 날린 바로 그 창의 옆이었다.

나와는, 그 일이 있었던 봄날의 전이나 후나 별다른 교우관계가 없었던지라 그 이후의 소식은 알 수가 없다. 특별히 나쁜 얘기는 없었던 것으로 보아 그 녀석도 평범하고 무난하게 살고 있으리라 추측할 뿐.

- 3 -

종이비행기 접는 방법이 생각난 것은 차창 밖의 새들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나서도 한참이나 후였다. 몇 번의 시행착오를 겪은 것도 아니고, 그냥 갑자기 다시 생각난 것이었다. 날개는 이렇게, 마무리는 이렇게.

그렇게 종이비행기를 마저 접다가 나는 피식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난 그때의 종이비행기를 아직까지도 접고 있는 게 아닌가, 교실 안이 아니라 버스 안에서. 아직 난 내 종이비행기를 날려본 적도 없는 것이다, 사실은. 비행루트야 어떻게 되든, 그것은 내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 않은가.

방금 완성한, 조그마한 종이비행기를 창틀의 틈에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한참 동안 봄햇살 가득한 창 밖 하늘을 바라봤다, 마치 고등학교 교실 창가에 서 있던 수년 전의 그 시절처럼.

(2001년, Written by bluemoon.)



[ 이 방이 타지가 되었는지 내가 타인이 되었는지 ]

집이란 한번 떠나면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곳이다. 돌아온다고 해도 그때는 이미 타인이 돼 있기 때문이다. - 윤대녕, [ 코카콜라 애인 ]中

*

소년이 짧은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방은 텅 비어 있었다. 원래부터 살아있는 것이 존재하던 곳은 아니었지만, 화면이 고장났는지 소리만이 맹하게 울려 퍼지는 15인치 중고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이 끊겼는지 케이블 모뎀을 통해 초록색 램프의 일부만을 껌벅거리고 있는 컴퓨터를 보고 있으려니 힘이 쑥 빠지고 말았다.

그러나 분명히 겉모습은 떠나기 전과 마찬가지였다. 이불도 방 한 쪽에 곱게 개켜져 있었고, 간단하게나마 청소를 하고 간 방바닥은 굴러다니는 머리카락 하나 없이 깨끗했다.

그때 텔레비전에서 큰 소리가 났다. 방송되던 축구경기에서 나는 소리인 듯 했다. 어느 팀에선가 골을 넣었겠지. 우리나라의 국제경기가 있다는 것 같던데. 소년은 그냥 그렇게 중얼거렸다.

"여기… 내 방이… 아니었던가…"

소년은 멋쩍은 듯, 짐을 내려놓자마자 머리를 한번 쓸어올렸다. 먼지인지 뭔지가 머리에서 붕 뜨더니, 조용히 바닥에 내려앉았다. 그리고는 눈 깜짝할 사이에 시야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2001년, Written by bluemoon.)



[ 어느 정육점의 겨울 ]

새까만 겨울밤이었다. 좁은 골목에는 가로등이 하나밖에 없어서 어둡기까지 했다. 골목 한쪽은 온통 카센터였고 다른 한쪽은 철거를 시작한 허름한 식당들이었다. 간간이 보이는 문틈으로 불빛들이 새어나오고 있긴 했으나 그다지 사람이 살만해 보이는 집은 별로 없었다. 그 중에 쓰러져가는 정육점이 하나 있었다.

아직 유치원도 들어가지 못했을 정도로 어려 보이는 남자 아이 하나가 흰 페인트가 많이 튄 유리창을 통해 정육점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김이 가득 서려 있어서 창 안쪽은 잘 보이지 않았다. 붉은 전등불빛만이 뿌옇게 김이 서린 유리창 위로 번져 보일 뿐이었다. 찬바람이 연이어 골목에 불어 들어왔으나 아이의 희고 얇은 옷은 그다지 흩날리지 않았다.

아이보다 머리 하나는 큰, 하지만 역시나 어려 보이는, 여자 아이 하나가 긴 머리를 위로 질끈 묶고 고기를 덩이째 자르고 있었다. 제 팔뚝만한 칼을 능숙하게 다루는 것이 한두 번 해본 일이 아닌 듯 했다. 딱, 딱, 딱, 하는 도마 소리만이 붉은 불빛 사이사이로 울려 펴졌다.

여자 아이가 바로 보이는, 문지방 하나를 사이에 둔 온돌방 안에는 왼손이 조금 오그라든 여인이 쭈그려 앉아 있었다. 젓가락이 겨우 들어갈 만큼 구멍이 작은 녀석 하나에 3전이니 5전이니 하는 공업용 검정 고무링을 원판에서 띄어내느라 바늘로 고무판을 쿡쿡 찔러대고 있었다. 방안은 고무냄새로 가득했고 여인은 그 냄새에 머리가 아픈지 자꾸 눈살을 찌푸렸다. 방안의 형광등과 여인, 가게의 붉은 등과 여자 아이. 그 사이는 짙은 고무 냄새와 비린 돼지고기 냄새가 뒤섞인 채였다. 그 자리는 늦은 밤마다 어린 남자아이 하나가 과자 대신 생라면을 우적우적 씹어먹으며 앉아있던 문지방이었다, 적어도 일 주일 전에까지는.

창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던 아이는 유리창을 두드려 보려다가, 갑자기 내리기 시작한 함박눈에 놀라 고개를 들어 위를 바라다보았다. 이미 다시 내린 고개 밑으로는 방금 창안의 소녀가 떼어낸 돼지고기 비계만큼 하얀 눈이 쌓여있었다.

아이는 눈을 끔벅였다. 춥지도 않은지 두 팔을 쭉 뻗어 유리창을 만져보려 했다.

그러나 창은 아이에게서 조금씩 멀어져만 갔다. 아니, 아이가 창에서 멀어져가고 있는 중이었다.

처음부터 그 골목은 아이의 발 저 밑에 있었다.

(1999년, Written by bluemoon.)



[ 허브향, 그, 나 ]

허브가 말라 죽었다. 책상 위 조그만 화분에서 자라던 허브가 시들어 죽어 버렸다. 허연 곰팡이가 흙 정도의 양만큼이나 흙 위에 수북하게 쌓여있었다.

나는 묘한 감이 드는 갈색으로 말라비틀어져 툭 건들면 금방이라도 떨어져내릴 것만 같은 허브잎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내 불찰이다, 라고.

*

옛 친구의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그 소식을 듣고나서도 한참 동안을 누군지 곰곰히 생각해봐야할 정도로 오랫동안 떨어져 지내던 친구였다. 고향인 태흥리에서 다섯 살 무렵까지 살았으니 아마도 그때까지의 친구겠지, 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여태껏 그를 찾아본 적 없는 내 자신이 아쉬웠다. 친척들이 뿔뿔이 흩어져 살고 제사같은 것도 집에서 지내다보면 그다지 고향을 찾을 이유가 없다.

태흥리로 내려가는 시외버스 안에서, 보기만 해도 눈이 시려오는 겨울 하늘을 바라보면서 수십 번의 낮은 한숨을 쉬어댔다. 잊고 지내던 이들에게 왜 돌아가고 있는지 정확한 이유도 알지 못한 채, 어느 소설처럼 어느 영화처럼 '그냥'이라는 이유도 달지 못하는 스스로가 못마땅하기도 했다. 하지만 간만의 귀향이 내 기억 속에서부터 새어나오는 어느 허브향 때문이라는 사실을, 나는 어렴풋이 깨닫고 있었다.

그 친구의 집에는 허브가 가득했다. 지금이야 알겠지만, 그때는 알 턱이 없던 민트며 로즈마리 향을 내뿜는 허브가 그의 집마당 여기저기서 자라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집 밖에서도 허브향을 달고 다닌다는 사실을 모르는 채 애들과 함께 들이며 바다를 뛰놀았고, 왠지 모를 그의 향기에 이끌린 나는 그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기 일쑤였다.

그러나 그의 향기는 허브향이 전부가 아니었다. 아무리 모두가 어린날들이라지만 허브향만으로 사람을 끌 수는 없는 법이다. 그가 또래들 사이에서 두드러져 보인 것은 큰 키와 덩치 때문이었기도 했지만, 그 겉모습만한 크기의 의리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지금으로써는, 확신할 수 없을 정도로 시간이 흘렀지만, 아마도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골목대장조차 없을 정도로 어리던 시기에 그는 그런 분위기로 허브향처럼 우리에게 묻어있었을테고.

한번은 마을회관의 유리창을 깬 적이 있다. 달걀껍질 색으로 페인트칠을 한 단 층짜리 건물이었다. 앞에는 지덕노체인가 하는 새마을 운동과 관련된 클로버 그림이 새겨진 바위돌도 있는.

그 사고는 우연은 아니었고, 그러고 싶은 - 보통의 어린 아이들은 가끔 그런 짓을 한다 - 마음에 휙하고 돌멩이를 던져 유리창을 깬 것이었다. 그때 나서서 나를 감싸준 것이 그였다.

아마도 많은 아이들이 크고 작은 일로 그 애에게서 그러한 '보호'를 받은 적이 있겠지. 그는, 비록 내 경우가 유치하고 단순한 예였지만, 그런 애였던 것이다. 너닷살 난 애가 그런다는 게 그리 흔한 경우인가. 그래서 나는 여태껏 그애를 완전히 잊을 수 없었나 보다, 처음 내게 묻은 허브향이 너무나도 진해서.

버스에서 내리고 나서도, 잃은 방향감각을 되찾을 때까지 분명한 이유를 대지 못할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여태까지는 생각도 못했으면서 막상 그를 만난다니 괜히 마음이 설레어오고.

그는 과연 얼마나 괜찮은 놈이 되어있을까. 내가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멋있는 녀석은 아니겠지, 설마.

그러나 그 애의 집으로 가는 길부터 당황스러움 투성이었다. 겨우 옛 기억을 되살려 더듬더듬 그 애의 집을 찾으려고 보니, 너무나 많은 것이 변해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가로등이 많지도, 길이 콩크리트로 포장되어 곧게 뻗어있지도, 길가에 예쁘게 동백나무가 심어져 있지도 않았는데. - 하지만 그럴 수도 있지, 몇 년이나 지났는데.

그렇지만, 그렇다 해도 상가로 다가가는 동안 점점 더 나를 당황하게 한 것은 바로 겨울 공기였다. 허브향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겨울 공기. 단지 차가운 느낌만이 드는 겨울공기. 그래서 더욱더 상가의 느낌이 들게 하는 겨울 공기.

게다가 막상 상가에 들어서자마자 내 입에서 나온 말은 정말 단 한 마디 뿐이었다. - 아!

마당에는 단 한 뿌리의 허브도 없었다. 아니, 없는 게 아니라 모조리 말라 비틀어진 채 죽어있었다. 허브란 말라 죽어도 그 마른 잎에서 허브향을 내뿜기 마련인데 이 죽은 허브들은 왠일인지 아무런 향도 내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일인지, 어떤 일들이 이 집에서 벌어졌던 것인지 궁금해졌다.

게다가 배례를 하고 향을 올린 후 드디어 만나게 된 상주, 바로 그는 나를 더욱더 당황케 했다. 그는 더이상 내가 기억하는 모습이 아니었던 것이다. 작은 나보다도 더 왜소해보이는 덩치, 시커멓고 지저분하게 그을은 얼굴, 누렇게 변한데다가 졸린 것처럼 초점이 없는 눈빛, 심하게 더듬거리는 말투.

나는 더이상 그를 볼 수가 없었다. 어쩌면 치사하고 비정해보일 수도 있지만, 기억 속의 그를 그대로 남겨두고 싶다는, 말도 안 되는 핑계를 스스로에게 갖다붙이며 상가 밖으로 얼른 빠져 나왔다.

상가 특유의 묘한 향이 나를 따라 나왔다. 향내를 중심으로 살아있는 사람 냄새와 삶은 돼지고기 냄새같은 것들이 섞여 있는 어두운 향.

길가에 군데군데 모여서 크고 녹슨 드럼통에 불을 피워 얘기를 나누고 있던 동네 어른 분들을 만나뵈었다. 그의 아버지는 술독으로 죽었다고 했다, 마당의 모든 살아있는 것들이 말라죽기 직전에. 그리고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말없이 사라진 아들은 친구들과 무슨 사업을 해서 꽤 많은 돈을 벌었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곧 투기인지 도박인지를 하다가 패가망신하여 집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그 뒤는 듣지 않았다. 그가 젊은 나이에 왜 그리 되었는지, 그의 아버지는 왜 술독에 빠졌는지 더이상 알고싶지 않았다. 어차피 이곳에 다시 돌아올 일도, 그를 다시 만날 일도 없을테니.

돌아오는 길에 마을회관을 보았다. 4 층짜리 신축 건물이 되어있었다. 회색 비슷한 색에다가 근사하게 대리석 장식까지 되어있는 그 건물 앞에 다가갔다. 건물의 유리창은 모두들 하나같이 맑고 깨끗했다. 돌아서는 내 뒤에는 회관 신축에 기부금을 낸 마을 유지분들의 이름이 '자랑스레' 새겨져 있는 대리석판이 입구쪽 벽에 붙어 있었다.

*

집에 돌아오니 책상 위 허브가 말라죽은 그대로였다. 곰팡이도 여전히 흙 위에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나는 갈색으로 말라비틀어진 허브잎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적어도 나만은 시들어도 내 향기만큼은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라고.

(1999년, Written by bluemoon.)



[ 마지막 에피소드 - 마치 도미노 같은 ]

- 1 -

빨강, 노랑, 초록. 색깔은 이렇게 셋.

도미노가 차례로 쓰러진다.

쓰러지고 있다.

쓰러졌다.


이제 다시.

- 2 -

비가 올 때면 가끔, 아주 가끔 오래 전의 그 애가 생각나곤 한다. 좋아한다고 내가 먼저 고백했는데도 아무런 대답도 안 해준 채 아주 미묘한 사이로 몇 달이나 내 곁에 있어주던 그 애가.

오늘도 어제처럼 그제처럼 비가 왔다. 잠깐은 가랑비가 잠깐은 장대비가. 비오는 여름이란 시원함 이상의 후덥지근한 느낌을 준다. 그 애와의 기억들보다도 훨씬 더 후덥지근한 느낌을. 그 느낌 속에서 나는 오래 전의 어느 맑은 날들을 회상하기도 하고.

- 3 -

나, 옷 샀어.

우연히 버스 정류장에서 그 애를 만나 꺼낸 말은 그것이었다. 굳이 말을 안 했어도 손에 들려진 옷가방을 보고서 알았겠지마는.

마치 햇살 한 줄기가 모두 다 태양 그 자체인 것처럼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비치 보이즈의 '코코모'나 '서핑 USA'가 마른 입 속에서 맴돌 정도로, 정말 더운 날이었다.

무슨 옷?

그냥. 티셔츠야.

그러자 그 애는 다시 한번 내 옷가방을 힐끔 내려다봤다. 그리고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버스가 오는지 확인 했다. 헛기침을 쿨룩하고 하더니 옷가방을 잡은 쪽의 손을 손가락 끝으로 쿡쿡 찔러댔다.

좀 보자.

눈이 마주쳤다. 그 애는 씨익 웃어 보였다. 눈 따가운 여름 햇살이 그 애의 뒤편에서 비쳐와 그 애의 얼굴에 그림자를 만들었다. 난 그 그림자에 대고 한 마디 말을 툭 내뱉았다.

싫어.

응?

그 애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듯이 눈살을 찌푸렸다.

째째하긴. 뭐 옷 갖구 그러냐? 무슨 자작시 보여달라고 조르는 것두 아닌데.

난 맞은 편에서 달려드는 햇살에 눈을 조금 찌푸였다. 귀밑에 난 땀방울들을 검지손가락으로 닦아내며 생각했다. 자작시? 그게 언젯적 얘기더라, 내 자작시를 보여달라던 그 애의 부탁을 거절했던 게. 핏, 하고 웃음이 나왔다.

그냥 싫은 거야. 집에 가서 맘에 안 들면 바꾸기도 해야 하구.

봐서 내 맘에 들면 어쩔 건데?

그래도 싫어. 나중에 보여준다니깐, 입고서.

그 애의 표정을 살폈다. 다분히 노려보는 분위기의 눈빛을, 나는 가만히 외면하면서 옷가방의 손잡이 끈만 만지작거렸다.

칫, 니 맘대로 해.

마침 버스가 왔다. 그 애는 인사도 않고서 버스에 올라탔다. 나 혼자서만 안녕, 하는 말을 그 버스에 같이 태워보냈다.

그 날 이후 그 해 여름은 온통 비투성이었다. 비가 오고 또 오고 또 오고 또 오는. 그리고 다시는 그 애를 만나지 못했다.

- 4 -

글 쓴다는 내 고교동창 녀석 하나는 버스를 탈 때마다 늘 오른쪽 뒤에서 두 번째 자리에 않았다. 그리에 사람이 이미 앉아 있었다면 다른 자리가 비어 있더라도 그냥 서서 갔다.

이것이 나의 신조야. 하나의 신조가 쓰러지면 또 다른 신조도 연이어 쓰러지고, 그런 식으로 도미노처럼 모든 신조가 쓰러지지. 그러면 내 생활 자체가 마비되어버릴지도 몰라.

내가 그런 행동들에 의문을 표할 때면, 녀석은 언제나 나에게 그 말을 했다. 어쩌면 그 녀석의 생활은 신조 투성이었을지도 모른다.

난 가끔 그 녀석도 생각난다, 특히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이면 더욱더.

- 5 -

어제 밤늦게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버스정류장에서의 그 애에게서 오래간만의 전화를 받았다. 밤비가 내 바지 밑단을 적시며 올라오고 있을 때였다.

다음 달에 결혼을 한댔다. 물론 나는 축하해, 라고 말했다. 더 이상 할 말은 없었다. 한참의 침묵 후 그 애가 내게 남긴 말은 이랬다. 이젠, 네 자리로 돌아가. 이게 내 바람이야.

그 말을 들으면서 손가락 하나를 빗줄기 속에 들이밀었다. 그리고 쓰러져 가는 도미노 판의 길을 막았다. 이제 나의 도미노는 이 이상 쓰러지지 않는다, 이 이상은.

(1998년, Written by bluemoon. 1999년 일부 수정 - '마지막 에피소드'의 다른 결말.)



[ 1998, 트레이싱 페이퍼 ]

"좀 어긋나 버렸는데 괜찮아?"

진태는 저보다 스무 살이나 어린 사촌 동생의 대답을 기다렸다. 둘 다 어질러진 방바닥에 엎드려 있었다. 큰 유럽 지도 위에 트레이싱 페이퍼(투사지, 기름종이)가 겹쳐져 있었고, 그 주위에는 빨강이며 노랑 따위의 원색 색연필들이 널려 있었다. 사촌형의 물음을 듣기는 했는지, 정석은 트레이싱 페이퍼에 옮겨지다 만 유럽지도를 살펴보고만 있었다. 방 안은 창유리에 부딪히는 여름의 빗소리로 채워지고 있는 중이었다.

"괜찮지? 비 와서 그래. 습기 때문에 종이가 좀 축축하니까."

진태는 변명이라도 하듯 비를 탓했다. 정석은 조그맣고 하얀 얼굴을 잠시 찌푸리더니 노르웨이 서안을 가리켰다.

"새로 그려 줘, 이 부분."

작은 손가락 끝에는 카르스트 해안이 길고 구불구불하게 펼쳐져 있었다. 진태는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는지, 웃옷에다가 손바닥의 땀을 닦아내고는 다시 색연필을 잡았다.

"근데, 이런 건 왜 그리는 거니?"

진태는 지도를 낑낑대면서 베껴 그리고 있던 사촌 동생에게 물었다. 정석은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서 답했다.

"여름 방학 숙제."

"이런 게 초등학생 방학 숙제라구?"

"가보고 싶은 곳을 그려 오래, 지도를."

진태는 정석을 흘끔 바라봤다. 사촌동생의 작고 하얀 손은 센강을 그리고 있었다. 색연필로 그려진 가는 선이 트레이싱 펴이퍼 위에 흐르기 시작했다.

"그래서, 넌 어딜 가고 싶은 건데?"

"아일랜드"

"응?"

"아일랜드."

진태의 시선이 아일랜드에 닿았다. 트레이싱 페이퍼 밑의 진짜 지도 위에 씌어진 '더블린'이란 글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왜 하필이면 아일랜드니?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니?"

"그냥. 그냥이야."

정석은 트레이싱 페이퍼를 치우고서 진짜 지도 위의 아일랜드를 가리켰다.

"사진을 본적이 있어, 얼마 전에."

정석은 엎드린 자세 그대로 턱을 괴고서 말을 이었다.

"하얀 들길을 걸어가다 보면 하얀 담이 나오고, 또 하얀 집도 나오고, 빠알간 문에는 갈색 풀 지붕. 그리고 그 집 뒤로는, 짙은 초록빛 초원, 또 그 너머 절벽 저편에 펼쳐진 파아란 바다."

"난 무슨 조이스나 예이츠 예기라도 할 줄 알았지."

"응? 누구? 누구?"

"아냐, 아무 것도. 네가 알 리가 없지."

진태는 트레이싱 페이퍼를 지도 위에 잘 맞추었다. 그리고는 센강의 남아있는 끝자락에 파란 선을 그으며 중얼거렸다.

"난 아일랜드 하면 대기근이나 블룸스데이만 생각나던데."

"그게 뭔데?"

어린 사촌동생의 얼굴이 진태 앞으로 다가왔다. 진태는 오른손 검지 손가락 끝으로 정석의 이마를 꾸욱 눌러서 그 작은 얼굴을 밀어냈다.

"그런 게 있답니다. 긴 이야기인데, 어려우니까 나중에 다 알게 돼요."

진태의 말이 끝나자마자 정석은 몸을 일으켰다. 줄곧 엎드려 있느라 굳은 몸을 가볍게 풀었다.

"칫, '그런 게 있답니다'? 그게 뭐야?

정석이 나지막한 소리로 투덜거렸다. 그리고는 진태가 완성해 놓은 센강을 바라봤다. 다시 엎드려서 이미 다 그려진 잉글랜드 지방에 이어 웨일즈 지방을 베껴 그리기 시작했다. 창 밖의 빗소리가 커지더니 온 도버해협에 차오르기 시작했다.

"형"

"왜?"

"오늘은 일 안 가?"

"비오잖아."

"응?"

정석은 고개를 들어서 잘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사촌형을 바라봤다. 진태도 고개를 들어 잠시 창 밖을 보았다. 창 밖에서는 콩크리트 거리 위로 여름비가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었다.

"이렇게 비가 많이 오면 공사도 못 하잖니 포크레인 같은 거야 어느 정도 비가 와도 작업할 수 있지만, 나처럼 몸으로 때우는 사람들이야 날씨 안 좋으면 쉬는 게 당연하지."

"그럼 돈은?"

"돈? 무슨 돈?"

"일 하면 돈 받잖아. 그럼, 오늘 거는 못 받는 거야?"

정석은 말을 하면서 빨간 색연필로 그레이트브리튼 섬 하단에 점을 하나 그려 넣었다. 그리고는 그 곁에다가 꽤 큼지막하게 '런던'이라 써넣었다.

"못 받아, 돈은."

"왜?"

"돈은 일을 해야 받는 거잖아."

"형 탓이 아니잖아? 비 때문에 그런 건데."

"아무튼."

진태는 어질러진 색연필들을 일단 한쪽으로 몰아두고서 그 중 검정색 하나를 집어들었다. 그리고는 노르웨이와 스웨덴 사이의 경계를 베끼기 시작했다. 트레이싱 페이퍼 위에 길다란 선 하나가 새로 생겨났다.

"근데 형, 일 안 가면 좋아?"

"응?"

"비 많이 와서 일 못하게 되면 좋냐구."

"아니, 별로 안 좋아."

"나라면 좋을 텐데."

"뭐가?"

"일 안 하면, 일단은 편하잖아. 돈은 못 벌겠지만."

그 말에 진태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는 맞은편의 정석을 똑바로 바라봤다. 그러나 고개를 숙인 채 지도를 그리고 있어서 정수리 부근만이 보일 뿐이었다. 진태는 다시 고개를 푹 숙이고 덴마크를 향해 죽 삐져나온 스칸디나비아의 선을 조심스레 지웠다.

"넌 아빠한테서 용돈 받으니까 잘 모를 거야, 어째서 별로 안 좋은 건지."

대륙 부분이 완성되었다. 진태는 지도의 각도를 바로잡아 정석에게 내보였다. 어린 사촌동생은 그것을 한참동안 살펴보다가 아무런 말없이 다시 그레이트브리튼 섬을 그리기 시작했다.

"울 아빠 싫지?"

더 이상 그릴 곳이 없어 멍하니 창 밖만 바라보고 있던 진태는 느닷없는 질문을 받고나서 잠시 후에야 되물었다.

"큰아버지 말하는 거야?"

"응."

"뭐에 대해서?"

"그냥. 매일 형만 보면, '젊은 녀석이, 사는 건 그런 게 아냐!'라든지...... 매일 꾸중만 하잖아."

진태는 몸을 숙여서 삐뚤어진 트레이싱 페이퍼를 바로 잡았다. 고정을 시키려고 두 손으로 그 양 끝을 힘주어 눌렀다.

"얹혀 사는 주제에 무슨 불만이 있겠니? 같이 살도록 허락해 주신 것만 해도 고마운데."

"난 아빠 그러는 거 싫어. 내가 보기엔 형이 잘못하는 건 하나도 없는데 말야."

진태는 어린 사촌 동생의 그 같은 말에 피식 웃고 말았다. 그리고는 정석의 머리통에 꿀밤을 한 대 쥐어박았다.

"아빠 그러는 거 싫어, 라니. 그게 아홉 살 짜리 어린애가 할 말이냐?"

아홉 살 짜리 어린애는 꿀밤 맞은 머리를 제 손으로 문지르며, 트레이싱 페이퍼를 누르고 있는 사촌형의 손을 바라봤다. 무슨 이유에선지 손등이 벌써 거멓게 늙어 있었고 그 끝은 심하게 주름져 있었다.

그때 후두둑, 하는 소리와 함께 비가 더욱 거세어지기 시작했다. 창문 틈새로 빗물이 들어왔다. 정석은 색연필을 지도 위에 두고는 얼른 가서 창문을 제대로 닫고 왔다. 진태는 제자리로 돌아온 정석을 보며 중얼거렸다.

"비가 더 많이 오는구나. 장마도 벌써 끝났고 태풍도 아닌데."

정석은 진태가 든 검은 색연필을 가리켰다. 진태가 그것을 정석에게 건넸다. 그리고는 창 밖에 내리는 비를 바라보았다.

"이런 날씨라면,"

진태는 잠시 말을 쉬었다. 유리창에 맺힌 빗방울이 주르륵하고 흘러내렸다.

"내일도 일 나가기는 다 글렀구나."

진태의 한숨이 안개처럼 런던 주위를 뒤덮었다. 정석은 아일랜드의 윤곽을 다 그리고 나서 빨간 색연필로 북에이레와의 경계를 그리고 있었다.

"딴 일을 구하는 건 어때? 이번엔 좀 더 편한 걸로"

정석이 말했다. 그러자 아직 걷히지 못한 런던의 한숨 위로 진태의 말들이 또다시 쌓여갔다.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인 줄 아니? 요즘 일자리를 구한다는 건 말야......"

진태는 도중에 말을 멈추었다. 정석이 '더블린'이라는 글자를 아일랜드 위에 써넣고 있었다.

빗소리가 대서양으로부터 밀려들어오더니 아일랜드 해안을 뒤덮어 벼렸다. 곧이어 방안도 빗소리로 가득 찼다. 진태는 벌떡 일어나더니 창가로 다가갔다. 창 밖을 바라봤다. 마치 발 밑부터 차 오르고 있는 빗소리의 경계면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것처럼, 되도록 먼, 비 내리는 창밖 거리의 먼 곳을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나도 가보고 싶다, 아일랜드."

정석은 사촌형의 느닷없는 말을 듣고나서도, 한참 후에야 물었다.

"대기근? 무슨 데이? 그런 아일랜드 말야?"

"아니."

"그럼 예이츠? 조이스? 그런 아일랜드?"

진태는 아무런 답 없이 제 눈 높이의 유리창 면에 오른손 검지 손가락을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아니야, 그런 게."

진태의 손가락 끝에서는 어느새 빗소리가 방울을 이뤘다.

"하얀 돌길, 하얀 집. 빨간 나무문에 갈색 풀 지붕. 짙은 초록빛의 초원과 푸른 바다...... 그런 아일랜드."

말을 마친 진태는 고개를 돌려 정석을 바라보았다. 어린 사촌동생은 지도가 다 그려진 트레이싱 페이퍼와 원본 유럽지도를 맞추어보고 있었다.

"이잉, 영국이랑 아일랜드가 지도하고 조금씩 어긋나 버렸잖아."

정석이 울상을 지었다. 진태는 가까이 다가가서 몸을 숙여 직접 지도를 비교해 보았다. 잠시 지도를 살펴본 진태는 빙긋이 웃으면서 스무 살이나 어린 사촌동생에게 말했다.

"괜찮아, 이 정도는. 괜찮을 거야. 비 와서, 트레이싱 페이퍼가 축축해져서 그런 것일 뿐이니까."

(1998년, Written by bluemoon. 무수정.)



[ 무당벌레 ]

정복을 입은 경찰 둘이 집으로 찾아왔을 때, 나는 습관처럼 입에 배어 버린 말을 내뱉었다. 누나 또 왔어. 벌써 몇 차례나 겪은 일인지 세는 것조차 지친 나에게 건장한 두 남자를 맡겨둔 채, 누님은 평소보다 훨씬 더 곱게 화장을 하고 나서야 방에서 나왔다. 자, 이제 갑시다. 조금의 떨림도 없이, 여유롭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듯 내게 눈웃음까지 씽긋 내보이고서 누님은 하얀 하이힐을 챙겨 신었다. 같은 색의 긴 원피스나 상표를 알 수 없는 옅은 장미향의 향수와도 잘 어울렸다. 그리고는 경찰이 누님을 데리고 가는 것인지 아니면 누님이 남자 친구 둘을 끼고 가는 것인지 모를 정도로 자연스럽게, 셋은 현관을 나섰다.

순간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이 집을 떠나 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님의 집에서 그만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님이 출처 모를 값비싼 물건들을 하나 둘 가져와서 내게 자랑을 늘어놓을 때마다 들던 생각이었다. 건장한 경찰 둘에게 양팔을 붙들린 채 현관을 나서는 누님의 곱고 긴 생머리를 바라보며, 엄마 집에 가 있을게, 라고 한 것도 사실은 예전부터 머릿속 어딘가에 머물러 있던 말이었다.

서른이 다 되어 가도록 직장 하나 못 구해 누님 집에 얹혀 사는 처지이지만, 그래도 누님의 도벽을 부끄러워할 줄은 알았었다. 그럼에도 이제껏 누님을 질책할 수 없었던 것은, 그것이 우리 남매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소득원의 상당분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누님의 전과가 점점 늘어 갈수록 누님을 멀리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누님의 행위에 대한 인정 내지는 방관이었다기보다 포기 쪽에 조금 더 가까운 것이었다. 그러나 내가 누님을 차갑게 대할수록 오히려 누님은 내게 더 친근하게 대해왔고, 더 대단한 물건을 어디선가 가지고 왔다. 그로 인하여 더욱더 누님을 멀리하는 악순환 또한 계속되었지만.

그러나 단지 그 때문일까. 긴 머리를 흩날리면서 멀어져 가는 누님의 뒷모습이 이토록 부끄럽게 느껴짐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 오늘따라 유난히 누님의 장미향에 거부감이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왜 누님의 집을 떠나 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이토록 강렬히 드는 것일까.

누님의 향수 냄새가 사라지자마자 현관문을 닫고는 방으로 들어왔다. 가만히 방안을 서성거리다가 옷장 안에서 가방을 꺼냈다. 그리고는 티셔츠와 청바지, 그리고 그 외 잡다한 것들을 챙겨넣었다. 되도록 빨리 누님의 집에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가방을 짊어진 채 누님의 방에 들어갔다. 가구 외에는 아무런 소품들도 없이 그저 하얗고 깨끗하기만한 방. 장미향이 났다. 거울만 커다란, 좁은 화장대 위를 바라보았다. 향수병들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모두 열한 개였다. 일일이 확인해 가면서 장미향이 나는 일곱 개를 찾아냈다. 그리고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일곱 개 모두를 휴지통에 넣어버렸다.

그래도 누님의 방에서는 누님의 장미향이 사라지지 않았다.

*

아버지의 탈상 이후 가출에 가까운 분가를 했던 아들에게, 어머니는 차갑기만 했다. 그렇게 집을 떠나서 십여 년 동안이나 어머니를 다시 찾아뵌 적이 없는 아들녀석을 반갑게 맞이하는 것이, 어찌 보면 더 이상하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게다가 누님의 사정을 말씀드리면서 누님이 그러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하니, 어머니는 더더욱 굳은 얼굴을 하셨다. 누님이 그렇게 된 것을 모두 나의 탓이라 생각하셨는지, 내게 아무런 말도 더 건네지 않으셨다.

"누나는..."

회갑을 곧 맞이하게 되실 어머니는 아직도 등을 다 덮을 만큼 긴 머리칼을 유지하고 계셨다. 긴 침묵의 시간 후 내가 먼저 말을 꺼냈을 때 어머니는 그 뒷모습만 보이시며 가스 레인지 위에 보리차를 올려놓고 계셨다. 탁, 하는 소리와 함께 레인지불이 주전자를 달구기 시작했다.

"나빴어요, 옛날부터."

여전히 어머니는 내 말에 응하지 않으셨다. 그저 고개를 돌려 내 얼굴을 바라보실 뿐이었다. 그 눈빛은 누님과 내가 집을 떠나겠다고 선포조로 말했던 아버지의 상 직후 때와 아무런 변화도 없어 보였다.

늘 그러셨다, 어머니는. 어렸을 적, 내가 이발소집 아이를 두들겨 패 팔 하나를 부러뜨렸을 때에도, 갖고 싶다고 종종 졸라대던 조립식 탱크 장난감을 누님이 어디에선가 훔쳐왔을 때에도 그러셨다. 큰 꾸지람 대신 지금처럼 우리 남매를 바라보곤 하셨다.

여덟 살인가 아홉 살 때, 팔뚝이 내 것의 두 배는 되어 보이던 같은 반 아이 둘에게 두들겨 맞은 적이 있었다. 아무런 저항도 못하고 운동장 구석에서 십 분이고 이십 분이고 계속 두들겨 맞았는데, 아마도 내가 그네들 험담을 몰래 하고 다녀서 그랬던 것 같다. 아무튼 그렇게 맞고만 있을 때, 누님이 이 소식을 듣고 나를 구하러 달려와 주었다. 그리고는 그 가늘고 하얀, 연약해 보이기만 하던 팔로 내가 맞은 것만큼 그들에게 되돌려 주고 나서, 상처투성이가 되어 울고만 있던 나를 업고 길고 고운 머리칼을 흩날리며 집으로 돌아왔던 기억이 있다.

어머니는 그때도 아무 말 없이 우리를 바라보셨다. 내가 맞은 게 너무 아프고 억울해서 누님의 등 위에서 울고 있을 때, 누님은 어머니의 눈을 보고 나와 함께 울기 시작했다. 나는 누님이 울 때서야 알았다. 어머니의 그 눈은 말 이상의 꾸지람이 되어 우리에게 다가온다는 것을. 그러나, 때로는 그 눈빛이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할 때도 있었다. 특히 우리들이 커 갈수록.

"엄마가 옛날부터 누나 버릇을 고쳐 주었더라면..."

"그래서, 너는 그런 누나가 싫은 거니?"

어머니는 차분한 목소리로 내 말을 끊으셨다. 주전자가 뜨겁게 달구어지는 소리가 부엌을 조금씩 채우고 있었다.

"넌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

"네?"

"넌 누구에게도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어."

제가 어떤데요? 무엇 때문에 자격이 없는데요? 서른이 넘도록 변변한 직업이 없다는 게? 아직도 어머니를 엄마라 부를 정도로 철이 안 들었다는 게? - 시실 이런 것들은 누님이 곧잘 했던 말들이었다. 너 아직도 직장 못 구한 거 어머니가 아신다면 많이 슬퍼하실 거야. 그리고, 엄마가 뭐니. 이제 그렇게 부를 나이는 지나지 않았니.

하지만 굳이 이런 말들을 꺼낼 필요는 없었다. 어머니는 내 부릅뜬 눈만 보고도 내가 지금 반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실 테니. 그래서인지 어머니는 아무런 말도 없이 나를 바라보기만 하셨다.

보리차가 든 주전자에서는 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한참 동안이나 나를 바라보셨다. 부엌 공기가 무척이나 후덥지근했다. 부엌 안 분위기는 그 후덥지근한 공기보다 더 답답했다.

"차라리 화라도 내 봐요. 엄마!"

어디선가 고양이 울음소리가 낮게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어머니는 입을 여셨고, 나 또한 무슨 한이라도 풀어놓을 기세로 말을 꺼내어 놓기 시작했다.

"엄마는 말이다, 네 누나가 착한 아이라는 걸 믿어, 지금도."

"그런 말 말고, 그냥 화를 내 보시라니까요, 내게라도!"

"옛날부터 그랬듯이 말야, 네 누나는 언제 어디에 있어도 우리 가족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고..."

"엄마가 한번이라도 화를 냈었다면..."

"특히 널 항상 아끼고 있고..."

"누나가 그런 버릇 안 들게 어렸을 때 한 번이라도 꾸중을 하셨더라면..."

"지금도, 그래서 난 네 누날 믿고 있다."

"누난 지금처럼 이렇게 살고 있지 않을 거란 말예요!"

"네 누난 정말 착한 애란다."

격앙된 내 목소리가 부엌을 채울 동안, 어머니도 나름대로 할 말을 다 하고 계셨다. 둘이 거의 동시에 말을 그쳤을 때, 난 온몸에 땀을 흘리고 있었고 어머니는 행주를 곱게 접고 계셨다. 역시 이번에도 어머니는 화를 내지 않으셨다. 아니 언성조차 높이지 않으셨다. 행주를 접는 손이 조금씩 떨리는 것이 보였지만, 아들녀석이 이렇게 열을 내고 있을 때에도 어머니는 언제나처럼 조용하고 침착했다.

"부끄러워요, 모두. 아빠가 살아계셨더라면..."

순간 어머니의 섬뜩한 눈빛을 느끼고는 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는 보리차가 다 끓도록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셨다. 누님이라면 보고서 옛날처럼 울어버렸을, 그런 눈빛이었다. 나는 그 눈빛 앞에서 한 마디도 더 말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에 대한 가정은 꺼내서는 안 될 화두였던 것이다. 어머니는 내 말을 더 들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셨는지 고개를 돌려 레인지 불을 끄셨다. 그리고 냉장고에서 물병을 꺼내어 보리차를 조심스레 채워 넣으셨다. 주르륵 떨어지는 물소리를, 나는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모두 주워들었다.

물소리는 내 십대 후반의 비 오던 어느 날을 생각나게 했다 서울 올림픽이 열리는 바로 전 해였던가 혹은 더 이전이었던가. 물병 안으로 떨어지는 보리차 소리를 내며 찬 비가 쏟아지던 가을날이었다. 염색공장에서 일하시던 아버지는 투쟁이 끝난다던 그 날 새벽, 공장 여자 화장실에서 갈비뼈 두어 개가 부러진 주검이 되어 발견되었다. 찬 비가 쏟아지던 그 가을날에.

어머니는 보리차를 식히려고 싱크대 위에 물병을 올려놓으셨다. 그리고 나서는 물병처럼 가만히 서 있는 나를 지나서, 안방으로 그냥 들어가버리셨다.

아직 병 안에서 출렁이고 있는 보리차를 바라보았다. 누런 빛깔. 부엌에는 보리차가 든 병과 나만이 남게 되었다. 그러나 어머니가 계시거나 안 계시거나 부엌은 조용하기만 했다.

*

부엌의 보리차는 아직 완전히 식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며 어느 때부터인가 '초등학교'라 불리우는 내 과거의 국민학교 정문에 다다른 것은 아직도 햇살이 덥게만 느껴지는 늦은 오후였다. 눈에 띄게 줄어든 동네 크기로 봐서 분교 정도가 됐을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아직까지 교문에는 초등학교 교패가 버젓이 붙어 있었다. 무성한 잡초 위로 담쟁이덩굴이 듬성듬성 올라붙은 돌담을 지나며, 난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이것은 단순히 어머니와 나의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벌어진 싸움만은 아니었다. 나의 지난 이십대만큼이나 긴 공백이 어머니와 나 사이에 있는 것이다. 게다가 그 동안, 마치 잊고 있던 담의 존재를 덩굴이 확인시켜 주듯 누님에 대한 마음의 벽도 확인 할 수 있었다.

누님의 도벽 때문이야. 아니야, 어릴 때 그것을 고쳐주지 못한 어머니 탓이야. 그것도 아니야, 아버지가 돌아가시지만 않았더라면... 그러나 그것들은 이미 이십 대 하고도 저편에 있다, 라고 생각을 하면서 교문에 기대어 섰다. 이마에서 땀이 흘러내렸다.

이렇게 더운 날에도 누님은 남들보다 먼저 학교를 빠져나왔다. 언제나 달음박질을 하며. 나는 먼저 수업을 마치고도 곧잘 누님을 기다리면서 운동장에서 뛰놀았고, 그럴 때면 누님도 친구들과 어울리기보다는 나와 함께 집으로 가기가 일쑤였다. 우리 남매가 항상 만나던 장소가 이 교문 앞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흘러간 시간만큼이나 낡아버린 교문 버팀대만이 누님 대신 내 곁에 서 있었다.

누나, 이것 좀 봐라.

뭔데?

짜자안!

그렇게 내가 보여주던 물건들은 언제나 지저분한 잡동사니들이었다. 사슴벌레 죽은 것이나 부러진 실로폰 애, 혹은 헐어 흐트러진 가발 따위.

얘, 이게 뭐니?

왜?

좀 깨끗한 걸 가지고 놀아야지.

맞다, 누님은 깨끗한 걸 좋아했지.

특히 내가 손에 흙모래 묻히는 것부터, 심지어는 방 청소하면서 먼지 뒤집어쓰는 모습을 보는 것까지도 싫어했지. 그래서인지 청소는 늘 자진한 누나의 몫이었지.

어느 틈엔가 이층 짜리 낮은 학교 본관을 돌아서 뒤뜰에 이르렀을 때, 전에는 없던 작은 연못을 보게 되었다. 우리나라 지도 모양을 하고 있었는데, 인천서 강릉까지 간신히 한번에 뛰어넘을만한 크기였다. 제주도는 없었다. 초등학교 연못이라면 있을 법한 과자봉지 따위도 하나 없이 깨끗하기만 했다. 대신에 소금쟁이 몇 마리가 수면 위를 가볍게 미끄러지듯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꼬마 애 둘이 있었다. 열 살이 채 안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와 그보다 더 어려 보이는 남자아이였다. 여자아이는 긴 머리에 하얀 피부, 남자아이는 통통한 얼굴에 큰 눈을 갖고 있었다. 둘 다 연못 맞은편에 놓인 큰 돌 위에 앉아 있었다. 더운 햇살이 연못과 아이들을 덮었다.

전에는 이 자리에 연못 대신 꽃밭이 있었는데. 봄이면 민들레 홀씨 하얗게 날리고 가을이면 누님을 닮은 코스모스가 가득 피던. 좁은 꽃밭 가운데 내가 가만히 서 있노라면 꽃 틈에 앉아 있던 수많은 잠자리들이 석양볕을 거슬러 동시에 날아오르던 조촐한 넓이의 꽃밭.

하지만 사실 나의 눈을 끈 것은 지금의 연못이나 옛날의 꽃밭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덜 자란 채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는 버드나무였다.

덜 자라 있다는 것이 옳은 표현인지. 높이 뛰어오르면 나무의 맨 윗부분이 보이고, 길게 늘어뜨린 버들가지들이 땅바닥까지 닿아 어딘지 모르게 흉하게 보이는 버드나무. 여전히 그 모습이 옛날 모습 그대로니 덜 자랐기보다는 못 자랐다는 말이 더 어울리는 표현이 될까.

누님의 담임 선생님은 그 나무의 가지들 큼에 조그만 망 하나를 걸어두고는 하셨다. 수업 시간에 쓰실 거라며 잡아둔 무당벌레들을 넣어두던 망. 길게 늘어뜨린 버들가지 틈.

누나, 이것 좀 봐라.

뭔데?

무당벌레.

무당벌레?

뒤뜰 꽃밭 옆에서 누나를 불러세웠다. 그리고는 손바닥 안의 것을 자랑스레 내보였다.

응, 무당벌레. 내가 잡은 거다.

음... 누나한테 그거 좀 빌려줄 수 있니?

왜?

신기한 거 보여주려구.

신기한 거? 뭔데?

누님은 내게서 받은 무당벌레를 오른손 손등 위에 올려놓았다. 잘 봐. 무당벌레가 말야... 조그만 그 녀석은 햇살보다도 더 고운 누님의 손등을 타고 손끝을 향해 기어갔다. 누님은 간지러운지 연신 손을 움찔거리고 그럴 때마다 잘 봐, 잘 봐 하면서 내 시선을 끌었다. 누님은 마치 ET와 손가락을 맞대는 엘리엇 소년처럼 손가락을 하늘로 내밀었다. 무당벌레는 어느새 그 손가락 끝에 이르러, 잠시 머무른다. 누님은 빵, 하고 어설프게 총 쏘는 소리를 내고, 무당벌레 녀석은 때맞춰 하늘을 향해 날아올랐다.

무당벌레는 말야, 기어가다가 더 이상 갈 길이 없으면 그제서야 날아가야 한다는 걸 깨닫고 날개를 편대.

거짓말.

아까 봤잖아. 날아가는 거.

거짓말. 어쩌다가 날아간 걸 거야. 빵하고 손가락 움직여서 날아갔거나.

아냐, 정말 혼자 날아갔는 걸.

누난 거짓말쟁이야. 하나도 안 신기해. 내 무당벌레나 도로 내놔.

억지였다. 진작 말해줬더라면 내가 직접 날렸을 텐데, 저 혼자만 그것을 즐긴 누님이 미워서 그런 것이었다. 그러나 누님은 동생의 터무니없는 몽니마저도 그대로 받아들였다. 내가 울려고 하자 무당벌레를 잡으려고 꽃밭 쪽으로 간 것이었다. 그때 꽃밭에는 국화 화분들이 가득 놓여 있었다.

바보. 쉽게 구할 수 있는데.

따가운 햇살 아래서 국화잎을 하나하나 뒤집으며 무당벌레를 찾던 누님에게 말을 건넸다. 누님은 무늬도 없는 하얀 손수건을 꺼내어 이마에 송송 맺힌 땀방울들을 닦아냈다.

어디에서?

나는 버드나무 쪽을 가리켰다. 찢겨진 연녹색 치마처럼 줄기를 가리운 가지들이 흉측해보였다.

선생님 거잖아, 그건.

누님은 얼굴을 찌푸렸다.

거기에서 한 개만 가져와라, 응?

안 돼. 훔치는 건 싫어. 선생님께서 수업시간에 쓰실 거라며 만지지 말라셨는 걸.

하지만 누님은 내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울어버리려고 하자 금새 버드나무 쪽으로 간 것이었다. 나는 누님의 모습을,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바라봤다.

버드나무 곁으로, 누님은 살금살금 다가갔다. 선생님 혹은 친구라도 볼까봐 잔뜩 겁을 먹었다. 하얀 이마에도 고운 뺨에도 반팔 티셔츠 밑의 마냥 가늘기만 한 팔에도 땀방울이 맺혔다.

아무도 보지 않는데도 누님은 긴장한 채 버들가지를 두 손으로 가르고 줄기를 향해 조심스레 다가갔다 .얼마 후 흉측한 버들치마를 들추고 돌아온 누님의 손에는 무당벌레 한 마리밖에 없었다. 긴 눈썹, 곱게 쌍꺼풀 진 눈에는 보일 듯 말 듯한 눈물까지 고여 있었다.

그러나, 누님이 훔쳐온 무당벌레는 날지 않았다. 선생님이 아실 거야, 난 혼날 거야, 친구들이 날 도둑이라며 따돌릴 거야, 라며 누님은 집에 도착해서도 울기만 했다. 하지만 나는 나를 위해서 무당벌레를 훔쳐온 누님을 보며 중얼거렸다.

이 녀석 훔쳐온 녀석이라 그런지 날지도 못하잖아.

*

연못 맞은 편의 여자아이는 몸을 숙인 채 손을 연못 속에 담가 무엇인가를 찾고 있었다. 같이 있던 남자아이는 멀찌감치 떨어져 여자아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여자아이는 남자아이의 누나인 모양이었다. 남자아이의 오른발에 신발이 신겨져 있지 않은 것을 봐서는 연못에 빠진 남동생의 신발이라도 누나가 꺼내 주려고 하는 것 같았다.

내가 도와 주려고 맘을 먹었을 때, 별안간 여자아이가 바지를 걷어올리더니 내가 도와주겠다 말할 틈도 없이 신발을 벗고 연못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잠시 후, 여자아이는 그 애 무릎 깊이 만한 물 속에서 금세 신발을 찾아냈다. 시무룩한 표정으로 바라보기만 하던 남자아이는 기쁘게 달려와서 젖은 신발을 건네 받았다. 연못에서 나온 여자아이는 접은 바지도 내리지 않은 채 남자아이의 손을 잡고 운동장 쪽으로 사라져 버렸다. 나는 한참 동안이나 그 애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다리에 힘이 풀릴 정도로 운명적인 생각과 맞닥뜨렸다.

누님은 과연 누구를 위해서 무당벌레를 훔쳐왔던가. 난 무엇을 위해서 그런 것을 강요했단 말인가. 내가 바란 것은 조그만 무당벌레 녀석이었을 뿐, 누님의 크나큰 죄책감이 아니었는데. 내가 어린 맘에서 나온 억지가 누님을 그리 만들었는데도 난 여태껏 누님만을 탓해왔단 말인가.

기억의 연흔이 현재에까지 미치자 머릿속은 더욱 더 복잡해졌다. 지금은 어떠한가. 지금도 나는 누님을 탓하기만 하지 않는가.

모든 것이 나 때문에 시작된 일이었는데도, 누님이 아직까지 나에게 날 수 있는 무당벌레를 구해주려 혼자 애쓰고 있다는 것을 나는 왜 깨닫지 못했단 말인가. 여태까지도 누님에게 의지하는 생활은,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단 말인가.

누나는 널 아끼고 있고 그래서 난 누나를 믿고 있다, 라고 했던 어머니. 그 조용한 두 눈동자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엄마. 아니 어머니가 옳았다. 나는 누님을 믿어야만 했고, 내 자신이 누님의 무당벌레가 되어 스스로 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줘야만 했다.

생각이 여기에까지 이르렀을 때, 나는 버드나무 곁에 서 있었다. 덜 자란 버드나무의 덜 자란 그림자가 나를 덮어 주었다.

무성한 버들가지들을 손으로 걷어 보았다. 아직도, 이곳에는 조그만 망 하나가 걸려 있었다. 하지만 옛날의 그것이 아니라 깨끗한 새것이었다. 게다가 안에는 무당벌레 외에 풍뎅이 같은 것들도 들어 있었다.

조심스레 손을 넣었다. 그리고 무당벌레 한 마리를 집었다. 선생님께 혼날 거야. 누님이 내 옆에서 지켜보는 듯했다. 온몸에서 땀이 흘렀다. 누님은 아직까지 이 안에서 무당벌레를 꺼낸 적이 없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제 와서야, 내가 이 안에서 무당벌레를 훔친 최초의 사람이 되는 셈이다.

*

무당벌레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는다. 녀석은 한참이나 제자리를 맴돌더니 방향을 잡아 손들 쪽으로 기어간다. 손등 위에서 방향을 꺾더니 -누님 손등의 그 녀석처럼- 검지 쪽으로 기어간다.

무당벌레가 손가락 끝에 도달했을 때, 햇빛이 버들가지 틈을 비집고 내 손을 비춘다. 무당벌레는 손가락 끝에서 오랫동안 망설이더니 천천히 날개를 움직여대기 시작한다. 붉은 바탕에 검은 점들이 여러 개 박혀져 있는 조그만 날개를 움직여대기 시작한다. 그리고, 결국은 하늘을 향해 날아오른다. 덜 자란 버드나무, 그 밑을 벗어나서 집 방향으로 날아가 버린다. 덜 자란 버드나무 밑에는 더 이상 머무르지 않는다.

*

버드나무 밑에 가만히 서서 무당벌레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그 비행을 바라보았다. 조그만 녀석이라 그런지 금세 시야에서 벗어났다. 햇살이 너무 눈부셔서 무당벌레의 모습 대신 보리차 같은 눈물만 나의 두 눈에 고여왔다. 때마침 버드나무가, 덜 자란 버드나무가 그늘을 만들어 내 모습을 가려주었다.

(1998년, Written by bluemoon. 2006년 문단 수정.)

(드문 덧붙임)
위 글은 ENDLINE.NET 이름의 근간이 된 글이자, 여러 가지 한계를 느끼게 해 제가 직업으로서의 '글쟁이'를 포기하게 한 글이며, 개인적으로 가장 허술한 제 글쪼가리들 중 하나라 여기고 있는 글입니다. 홈페이지 개장 3주년을 자축하는 2003년에, -실제 ENDLINE 이름은 이보다 더 늦게 등장하지만요- 조심스레 올려봅니다.
사람은, 아무리 힘들어도, 자신의 끝에 이르러서는 날개를 펴고 날아오르기 마련이 아닐까요.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내 오른 쪽 어깨 위 일본 ]

- 1 -

'어쩌다가'가 아니고, 정말로 직접 찾아서 접하게 된 첫 일본문화를 생각해본다. 나의 경우에는 무라카미 하루키도 미시마 유키오도 미야자키 하야오도 아니었다. 대신에 스즈키 란란이라는 여가수의 '...of you'뮤직 비디오가 처음이었다. 아틀란타 올림픽이 열렸던 해인지 2002년 한일월드컵의 공동개최가 결정된 해인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아무튼 그 즈음의 가을 혹은 봄이었을 것이다.

충격까지는 아니었지만, 새로운 문화를 처음으로 자발적으로 접해본다는 느낌에 며칠 간 그이에 대한 소식을 구하려고 여기저기 수소문을 해보기도 했다. 사실 보이쉬한 여자를 좋아하는 내 취향에 맞는 외모였다는 게 한 이유가 되었지만.

하지만 그이에 관한 정보는 더 이상 들을 수 없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아무로 나미에나 X-Japan처럼 우리나라에서까지 유명한 이가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사쿠라나 옐로우 멍키즈 같은 소수 매니아 팬 층이 있지도 않은 경우이기 때문이었다. 지금처럼 인터넷이 활성화되어있는 시기도 아니었고.

사실 그 당시에 일본문화를 접한다는 것은, 물론 이전보다는 많이 쉬워졌지만, 웬만한 매니아가 아니고서야 꽤 어려운 일이었다. 일본 MTV나 홍콩 채널V가 국내 케이블 방송으로 대체되었고, 공식적으로는 일본음반 수입이 제한되어 있었으며, 일본어로 된 음악소리를 들은 일부 어른들은 눈살을 찌푸리기 일쑤였다.

그렇다고 그것이 '일본문화'였으니까 막연히 좋아했던 것은 아니었다. 단지 당시의 내 취향이 거기까지 뻗어간 것일 뿐이었다. 난 그레이엄 그린의 영역판 단편을 부족한 독해력으로 십여 번을 읽고, 80년대 태생치고는 보기 드물게 아바와 심수봉을 즐겨듣기도 하는, 그런 여러 가지 문화취향을 가진 녀석이었을 뿐이었다. 다시 말해서, 굳이 일본문화를 지금 와 언급하는 이유는, 단지 내 취향이었으니까, 라는 것이다.

동시에 나는 '서편제' 영화음악의 광적인 팬이었다. 영화 '꽃잎'에 나오는 애국가도 매우 좋아했고, 꽤나 진보적이었던 김덕수 사물놀이패의 음반도 가지고 있었다. 앞에서 언급했던 심수봉도 빼놓을 수 없고. - 그리고 이것도 내 취향의 일부였다.

*

그 시절에 나는 '셸 위 댄스'라는 영화를 봤다. 극장용 일본영화는 이것이 처음이었다. 사실 일본영화는 둘째 치고서라도 동양영화는 내 '취향'이 아니었으니. '셀 위 댄스'도 우연히 보게 된 것이었다. - 여기서 '우연히'란, 무심코 표를 사서, 캔커피 하나를 산 다음에 자리에 앉아, 영화가 시작되고 보니 일본영화더라, 그런 말이다. - 그리고... 영화 내용과는 무관하게, 영화가 결말에 달할수록 이상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그 기분은 묘하게도 오른쪽 어깨 위에 무엇인가 가벼운 물건이 올려져있는 듯한, 그런 종류의 것이었다.

- 2 -

만남의 경위는 잘 생각나지 않는다. 아마도 먼 친척이나 부모님 중 어느 한 쪽의 친한 친구분과 관련되어 있지 않나 싶은데, 그 애 어머니가 편찮으신 관계로 그 애만 우리 집에 살게 된 것이라는, 어쩌면 어느 책에서 읽은 내용이거나 꿈속의 내용이 내 경험과 섞여버린 것일 수도 있지만, 여하튼 그렇게 회상이 된다.

이름도 잘 생각나지 않는다. 그럴 수도 있다. 아무리 인상적인 추억이 있어도 이름 같은 건 생각이 안 날 수도 있다. 지금의 회상에서는 그 애의 이름을 '유키'라고 해두자(하루키의 소설인 '댄스댄스댄스'에 나오는 꼬마애의 이름이다). 뭐, 이름이야 후미코일 수도 있고 레이코일 수도 있고, 스즈키 란란이나 아무로 나미에일 수도 있다. 다시 말하지만, 잊어버릴 수도 있다는 거다. 그렇기에 일단은 '유키'라는 이름을 그 애에게 '배정'해 주는 것이다.

이미 밝혀진 것 같지만, 지금 말하려는 그 애는 일본 애였다. 그리고 여자애다, 라고 말한다면 조금 바보같이 들릴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 번 말해 두는데, 그 애는 일본에서 온 여자 아이였다.

*

"이름이 뭐야?"

"경보."

"난 유키."

"유키?"

"왜? 이상해? 일본 애니까 일본이름이 당연하지."

대놓고 우리말을 잘 하는 애가 이런 말을 하니 우스웠다. 내가 두세 살 정도 위인데도 꼬박꼬박 그리고 유창하게 말대꾸를 해댈 정도로 우리말을 잘 했다. - 아마도 그때 난 열 하나, 둘 정도의 나이였을 거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야, 경보라고 부르지 말고 오빠라고 불러. 알겠지?"

"그럼 너도 '야, 야'라고 부르지마, 알겠지?"

대충 이 정도의 애였다.

*

유키는 내가 처음 보았던 MTV인터뷰 안의 스즈키 란란과 비슷하게 생겼었다. 나이에 비해 얼굴선이 좀 명확한 편에다 숏컷트한 자그마한 머리, 만화같이 커다랗고 반짝이는 눈. 그런 애였다. 키는 나보다 주먹하나 정도 작았고 하얀 손도 무척이나 작았다. - 그런데도 이름만은 생각이 나지 않다니. 뭐, 그럴 수도 있는 거다.

*

"오빠, 원래 잘 안 웃지?"

그 애가 나를 오빠라 부르고 나서 한 첫 질문은 바로 이것이었다.

사실이었다. 조금은 의도적인 것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이빨이 못생겨서였다. 이빨을 남에게 내보이기가 싫었다. 매우 하얀 이었으나 치열이 문제였다. 어린 나이에, 내 단점을 내보여 비웃음을 사느니 억지로 잘 안 웃기로 맘먹은 지 오래였던 것이다.

"좀 웃어봐."

"싫어."

"좀 웃어봐."

"싫다니깐."

"좀 웃어보래두!"

나는 귀찮아서 이를 내보이며 억지로 씨익 웃어보였다. 그 애의 반응은 간단했다.

"푸훗! 하하, 이빨 여러 개가 빠진 것 같애."

그 애는 고른 이를 내보이며 웃어댔다. 난 조금 화가 났다.

"안 웃겠다고 했잖아!"

"히히, 내가 언제?"

그 애는 정말 재미있는 구경을 했다는 듯이 땀을 닦아낼 정도로 웃어댔고, 나는 삐쳐서 말을 그쳐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그 이후로 그 애 앞에서 난 정말 많이도 이를 내보이며 웃어댔다. 이미 다 봤으니까 뭐, 라고 생각하며.

*

아쉽게도, 사실 그 애가 우리 집에 머문 며칠 동안,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무엇을 하며 놀았는지 말다툼은 했었는지, 그 애의 이름처럼 잘 기억이 안 난다. 아마도 회상 자체가 억지로 되살려보려는 과거의 일이라서 그런 것 같은데, 때가 되면 하나씩 더 생각이 나리라.

- 3 -

"너네 집에 일본 애가 왔다며?"

태어나기 전부터 친구였던 녀석인 정철이가 학교에서 내게 물었다.

"응."

"어떤 애야?"

"뭐가?"

"일본 애하고 놀면 재밌냐?"

"뭐가?"

"요새 너 학원도 안 오고 학교 끝난 다음에 축구도 안 차잖아. 걔 때문 아냐?"

"유키랑 놀고 싶어서 그러는 거 아냐. 걔 혼자 집에 두기 뭐하니까 그러는 거지."

"아무튼. 자꾸 그 애랑만 놀다보면 애들이 너랑 안 놀지도 몰라."

"학교에 데리고 오는 것도 아니잖아."

"아무튼."

뭐가 싫은 건데, 라고 물으려다가 관뒀다. 답을 알고 있어서였다. 그건 유키가 일본 애였기 때문이었다. 그 애가 미국이나 프랑스 애였다면, 아니 어느 아마존 정글의 부족민만 되었어도 애들은 상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아이들의 유치한 감정이었는지도, 혹은 커서도 가지게 될 저급한 고정관념일지도 모른다. - 애들은 그런 거다, 가끔 어른들도 그러지만.

- 4 -

일곱 살 때 마셨던 공기나 여덟 살 때 걷어찬 길가의 돌멩이 하나하나에 추억을 가지고 있는 이는 없으리라. 특별한 의미 없이 일어나는 일에는 아무런 아쉬움도 없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유키와 지낸 얼마간은 내게 어떤 의미가 되었음이 틀림없다. 이른바 일종의 '사건'으로 칭할 수 있는 것. 적어도 분명 그 애는 내가 만난 첫 타국인(한국말 잘 하는 한국계통의 일본인)이었으니까.

이미 말했듯이, 그렇다고 해서 별 대단한 사건은 없었다. 어쩌면 지금의 그 애에겐 아무런 추억조차 남아있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나라는 사람을 어렸을 적에 만난 적이 있었는지 기억하고 있지 못할 수까지도 있고. 그럼에도 이제와 내가 그때를 추억하는 이유는 마지막 하루의 밤과 낮 때문이다.

마지막(유키가 떠나기 전에 우리 집에서 머문 마지막을 뜻한다.) 밤, 우리는 둘 다 잠을 이루지 못했다. 특별한 의미가 있어서는 아니었다. 난 그 날 낮에 낮잠을 너무 많이 잤고, 그 애는 -그 애 말에 따르자면- 다음날 집으로 돌아간다는 설레임에 잠을 못 이룬 것뿐이었다.

"오빠,"

한밤중에 우리는 집 근처의 놀이터에 나가 있었다. 우리 부모님이 잠든 것을 확인한 후 둘이서 나온 것이었다. - 사실은 유키 혼자 집 밖에 나가길래 따라나선 것이었다. 이렇게 생각해보니 우리는 같은 방에서 잠을 자왔던 것이었나 보다.

"오빠, 지금 조는 거지?"

우리는 차량 진입 방지용으로 놀이터 입구에 무릎 높이로 세워놓은 타이어 기둥 위에 나란히 앉아있었다. 날이 약간 쌀쌀했다. 바람이 휭하고 불 때마다 오싹하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치?"

"아냐."

"근데 왜 불러도 대답 안 해?"

"좀 추워서 그런 거야."

그 애는 앉은 채로, 발을 앞뒤로 흔들어 뒷발로 타이어를 연신 쳐댔다. '퉁퉁'거리는 소리가 밤공기 틈으로 퍼져나갔다. 퉁퉁.

"나, 내일 가는 거 알지?"

퉁퉁.

"알아."

"잊어버릴 거야."

"뭘?"

퉁퉁.

"모두."

퉁퉁.

"모두 뭘?"

유키가 갑자기 타이어 차기를 그쳤다. 그리고는 벌떡 일어났다.

"오빠도, 여기에서 있었던 일 모두도."

"......"

갑자기 주위가 조용해졌다. 그 조용함을 다시 깬 것도 유키였다.

"오빠 나 때문에 매일 학원에 안 간 거지?"

"응? 으...응."

그 애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나 오늘 이모한테 다 말해버린 거 알아? 근데 이제 생각해보니 미안한 거 알아?"

"......"

"좀 뭐라고 말 좀 해라. 난 다 말했는데."

"괜찮아. 모두..."

유키는 대답 없는 내 뒤로 가서 내가 앉아있던 타이어 기둥을 발로 세게 걷어찼다. 다시 퉁.

"가자, 오빠. 오빤 내일 학교 가셔야죠."

그리고 유키가 먼저 집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난 그 뒤를 터벅터벅 따라갔다. 그러다가 유키는 뒤를 돌아 내 쪽으로 다가왔다.

"빨리 좀 와."

"네가 너무 빠른 거잖아."

그렇게 우리는 함께 집으로 향했다. 차도 사람도 없는, 노란 가로등불들만이 켜진 길을 가로질러. 날이 흐려 별도 없었고 바람도 찬 편이어서 분위기로 기분이 좋아지는 밤은 아니었다.

*

그 날 밤, 난 적으나마 잠을 잤다. 그러나 유키는 -내 추측으로는- 끝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난 잠들기 직전에 졸리운 정신으로 들은 그 애의 물음을, 그리고 내 대답을 아직도 기억한다.

"오빠."

"왜?"

"좀 지나면 오빠 이름 잊어버릴 것 같아."

"......"

"오빠는 어때? 내 이름 기억해 줄 거지?"

"그럼."

"고마워. 자, 그런 의미에서 내 이름 한번만 더 불러줘. 응?"

유키는 내 곁에 누운 채 큰 눈을 동그랗게 키우고 내 눈을 바라며 대답을 기다렸다.

"유키."

"정말 고마워. 고마워, 오빠."

*

하지만 지금 난 그 이름을 잊어버렸다. 이제 생각해보니, 그날 밤 나는 너무 졸렸었다.

- 5 -

다음날은 무척 맑았다. 파란색의 큰 도화지 한 장을 하늘에다 그대로 붙이고 나서 빛나는 풍선 하나를 띄워놓은 듯하게 유치하도록 맑은 날이었다. 나는 학교가 끝나자마자 친구들을 뒤로하고 집으로 향했다.

"야, 경보! 축구하다가 가자!"

역시나 정철이가 날 붙잡았다.

"집에 갈거야"

"오늘도? 그 일본 애 때문에?"

"아냐."

난 고개를 저었고, 그 다음에 바로 말을 덧붙였다.

"걔, 오늘 자기 집으로 돌아갔어."

그러자 정철이는 내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툭.

"그럼, 오랜만에 축구나 한 판 뛰자, 응?"

난 다시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한참을 생각한 다음에 힘없이 말했다.

"싫어. 너무 졸려, 오늘은. 잠을 좀 자고싶어."

그러나 사실은 졸린 게 아니라 졸리고 싶은 거였다.

*

집 앞에 다다랐을 때, 난 깜짝 놀라고 말았다.

"학교 끝나면 빨리 집에 와야지, 뭐하다가 이제야 오는 거야, 달팽이 같애."

유키였다. 그 애는 작은 덩치에 걸맞지 않게 큰 가방을 등에 매고서 집 앞에 서 있었다. 나는 놀라움 반 반가움 반에 소리쳤다.

"아직 안 갔어?"

"이모가, 오빠 돌아오면 공항에 같이 오랬어."

"잠깐만 기다려."

나는 신발도 안 벗고 책가방을 집 안에 던져놓고서 다시 나왔다.

"언제까지 가야 되는데?"

그러자 유키는 풀어서 주머니 속에 넣어둔 손목시계를 꺼냈다.

"한 시간쯤 남았어."

"그럼, 버스를 타고 가자."

"이모가 택시비 줬는데?"

그 애가 지폐 몇 장을 내게 건넸다. 하지만 나는 그것들을 되돌려줬다.

"아냐, 버스 타고 가자. 그 돈은 너 가져."

"그치만 일본에 가면 필요 없는 걸."

"그냥 가져둬. 기념이라고 생각하면 되잖아."

그 말에 유키는 지폐를 다시 주머니에 구겨넣으며 말했다.

"알았어. 오빠 부탁 들어주지. 대신 오빠도 내 부탁 들어줘야해."

"뭔데?"

유키는 당연히 부탁을 들어줄 거라고 믿었다는 듯 곧바로 말을 이었다.

"내 가방 좀 대신 들어줘."

"무거워서 그래?"

"당연히 무거우니까 부탁하는 거지."

난 그 애에게서 가방을 건네 받았다. 하지만 가방은 매우 가벼웠다. 옷가지 얼마만이 들어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따라와, 가자."

난 아무 말 없이 가방을 어깨에 매고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

버스정류장으로 빨리 가려면 학교를 거쳐야했는데, 마침 학교에선 친구들이 축구를 하고 있었다. 친구들은 내가 유키를 데리고 가는 것을 보았고, 특히 정철이는 보자마자 내게로 달려왔다.

"갔다고 했잖아."

"나도 간 줄 알았어."

"여긴 왜 데리고 온 거야?"

말투가 좀 얄미웠다. 유키가 정철이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정철이는 유키의 얼굴을 잠깐 쳐다보더니 다시 내게 물었다.

"왜 데리고 온 거냐니까, 여기까지?"

"학교 데리고 온 거 아냐, 공항에 데리고 가는 중인 거지."

난 퉁명스레 대답하고는 유키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정철이는 유키를 다시 째려보고는 말했다.

"그럼 그 다음엔 축구하러 오는 거야?"

정철이는 유키를 다시 한번 째려보고서 내게 물었다.

"시간 되면."

그러자 정철이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며 운동장으로 달려갔다. 먼지가 일었다. 유키와 나는 운동장가에 잠시 서서 축구 경기를 바라봤다. 그들과 우리 사이에 두터운 모래먼지가 기둥처럼 일어났다. 오랫동안 비가 안 와서 바싹 마른 운동장 냄새가 코끝에 기분 나쁘게 다가왔다. 햇빛도 무척이나 세었다. 좀 어지러울 정도로.

갑자기 돌풍 같은 바람이 불었다. 모래먼지 층이 잠시 걷혔다. 순간 축구공이 날아왔다. 이리로 직접 날아오는 공은 아니었다. 애들이 차올려 공중으로 날아올랐다가 그냥 떨어지는 공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유키의 머리에 맞아버렸다. - 유키는 공을 맞더니 소리 없이 그대로 쓰러져버렸다.

모두들 축구를 멈췄다. 딴 애들은 제자리에 서서 나와 유키를 바라봤고, 정철이 하나만 우리 쪽으로 서둘러 달려오며 물었다.

"괜찮아?"

난 대답을 않은 채 우선 유키를 일으켜 세운 뒤 물었다.

"괜찮아?"

그러자 유키는 천천히 눈을 뜨며, 손으로 햇빛을 가리고 기침을 두어 번 해댔다.

"응. 괜찮아. 어제 잠을 안 자서 졸린 것 빼고는."

정철이는 안심이 안 된다는 듯 괜찮은지를 계속 물어봤다. 난 이제 됐다며 애들이 기다릴테니 계속 놀라고 정철이를 보내줬다.

난 그늘 쪽으로 유키를 데리고 갔다. 유키는 잔하품을 연거푸 해댔다. 그러다가 상수리나무 밑의 플라스틱 벤치에 앉자마자 내 오른쪽 어깨 위에 머리를 기대어왔다.

"졸려, 오빠. 오늘은 너무 졸려."

그리고 난 유키의 숨소리를, 마른 운동장에 계속 서 있어서 그랬는지 바싹 마른 그 조그만 숨소리를, 바로 귀 곁에서 들으며 잠시 앉아있었다. 유키는 그대로 눈을 감고 아무 말 없이 기대어있었다.

*

마른 운동장에서 축구공이 계속 오가고 있는 동안에, 유키는 비행기를 타고 일본으로 떠나가 버렸다.

- 6 -

영화 '셸 위 댄스'를 본 직후, '서편제'를 다시 봤다. 폐기처분되려는 것을 비디오 대여점 아저씨에게 조르고 졸라 간신히 얻어온 것이었다. -벌써 한 스무 번은 본 것 같다. 왜인지는 설명하기 어렵지만, '내 느낌'이 오는 영화다.

그리고... 영화 내용과는 무관하게, 영화가 결말에 달할수록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셸 위 댄스'를 볼 때와 똑같은 느낌이었다. 아니 그것만이 아니라 녹화해둔 스즈키 란란의 뮤직비디오나 일본 MTV, 심지어는 미시마 유키오의 단편이나 무라카미 하루키의 '댄스댄스댄스'를 읽을 때도 접해본 느낌이었다.

*

그렇게,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이유도 모르게 종종 이런 느낌을 느끼곤 한다. 무엇인가 내 오른쪽 어깨 위에 올려져 있어서, 눈을 감고 조용히 머무는 듯한 느낌을.

(1998년, Written by bluemoon. 2001년 일부 수정)



[ 고양이 ]

언제던가. 늦은 밤에 캄캄한 골목길 귀퉁이를 도는 순간 헉, 하고 놀란 적이 있다. 덩치 큰 사내가 검은 양복을 입고 무뚝뚝한 표정(을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분위기 상 그런 표정이었으리라)으로 내 앞에 서 있었던 것이었다. 정말로 간이 뚝하고 떨어져 나갈 것만 같은 공포였다. 그럼에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그 앞을 지나 쏜살같이 집까지 내달음을 친 다음, 이튿날 새벽 그 자리에 다시 가 보았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그 자리에는 아무도 없었다(혹시라도, 설마라도 죽은 남자의 시체 하나가 있어서 그 유령이 내 앞에 나타났다느니 하는 그런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그 대신 도둑고양이 한 마리가 쓰레기 종양제 비닐봉투를 뚫고 그 안을 헤집고 있었다.

나중에 고양이에 대한 글을 써 봐야지, 하는 생각을 한 것은 바로 그 때였다. 그리고 난 지금 이렇게 고양이에 대한 글을 써나가려 하고 있다.

*

옛날(이라고까지 표현하지에는 조금 어색한 시간이지만)에는 내 거의 모든 소설에서 고양이라는 녀석을 소재로 썼다. 어찌된 셈인지 지금은 잘 등장하지 않지만, 주인공의 망상상태를 현실상태로 되돌리는 역할을 맡았던 소재가 바로 고양이였다. 거꾸로 생각해보면 내 소설에는 망상상태에 빠진 등장인물들이 꽤 많았다 볼 수도 있지만. 어쨌든 고양이는 내 소설 속의 인물들을 현실로 이끌어내는 인도자 같은 소재였던 셈이다.

그렇다고 애드거 앨런 포우의 <검은 고양이>나 무라카미 하루키의 <태엽감는 새>에 나오는 고양이들과 내 글에 나오는 고양이를 같은 종류라 성급히 판단한다면 곤란하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난 고양이더러 썩어가는 시체를 지키게 하지도 않고(그건 동물학대다. 설령 현실이 아니라 글 안에서만이라 해도), '와타나베 노보루1)/ 너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시도 쓰지 않는다. 요컨데 그들의 고양이와 나의 그것은 다르다는 말이다.

여기에서 스스로도 의문이 생기는 점은, 왜 하필이면 고양이일까 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고양이를 특별히 좋아하는 것도 아닌데다가, 나는 물론이고 주변에 고양이를 기르는 이도 없는데도 고양이가 내 소설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정말로 이상한 일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아마도 무의식 중에 쌓여간 경험들의 결과가 아닐까.

경험이라.

내가 아는 현실 속 고양이들은 오로지 동네의 고양이들 뿐이다. 매우 평범하게 생긴 갈색 반점의 줄무늬 꼬리 고양이, 누런 털의 꼬리 잘린 고양이(전선 위를 걸어다닌다는 소문도 있다), 요즘은 거의 보이지 않는 회색빛의 썩은 꼬리 고양이(꼬리의 털이 듬성듬성 나 있어 표피가 다 드러나 있다, 징그럽게도)로 대표되는 우리동네 고양이들은 수도 수이지만, 때때로 밤마다 소란을 피우거나(아는 이들은 알겠지만 아기 울음같은 고양이 울음소리는 소름끼칠 정도로 괴기스럽다) 쓰레기봉투를 뜯어헤치는 등 도둑고양이의 전형을 보여준다. 나는 이런 고양이들을 보면서 고양이의 이미지를 익혀온 것이다.

고3시절 여름부터인가 집 계단 밑과 실외에 있는 보일러 밑에 도둑고양이가 살림을 차렸다. 보기에는 새끼 고양이가 셋인 것 같았는데 어미를 본 적은 없다. 새끼들은 여는 도둑고양이들처럼 사람의 기척을 피해다녔는데, 열린 문틈으로 부엌에 들어와서 여기저기 뒤적이다가도 내가 나타나자마자 잽싸게 밖으로 달아난 적도 종종 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도 녀석들을 보고있자면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마당에서 맞닥뜨리는 경우가 있더라도 예외없이 도망가 버리는 녀석들이었지만, 날이 갈수록 정이 드는 고양이들이었다.

그런 새끼고양이들이 한꺼번에 죽어 버린 것은 그해 가을, 추석 즈음이었다. 그때 집 안에 들어왔던 녀석들은 아버지에게 들키자 성급히 창 틈을 달아나려다가 그만 그 틈에 끼고 말았다. 아버지는 구두솔(구두솔? 구두솔이 그렇게 다용도였단 말인가?)로 녀석들의 작은 머리를 내리쳤고, 두 마리의 새끼 고양이는 창 틈에 낀 채 그렇게 허무하게 죽고 말았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그 후로 우리집에서는 새끼 고양이를 다시 볼 수 없었다(애당초 새끼는 셋이 아니라 둘이었나 보다). - 뒤늦게 녀석들의 부고를 받은 나는 잠시동안 멍하니 앉아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었다.

덧붙이자면, 아버지는 죽은 고양이 둘을 쓰레기 봉투에 넣어 밖에 버리셨고, 이튿날부터 며칠 간 비오는 날이 계속되었다.(정말 계속 되었던가? 그냥 머리 속에 그렇다고 각인되어진 것은 아니고?) -뱀이 죽으면 비가 내린다는 소리를 듣긴 했다만. 고양이의 경우엔 잘 모르겠지만.

고양이에 대한 내 경험은 이 정도이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고양이에 대한 경험이 늘어만 갈수록 내 글 속에 고양이가 등장하는 빈도는 줄어만 간다는 것이다. 필연적인 인과관계가 아니어서 더욱 이상한 일이다.

*

< 하차 - 어느날 밤, 그 이후 >라는 글쪼가리의 마지막 부분에서, 밤골목의 고양이를 보고난 후 집을 향해 고양이처럼 뛰어가는 주인공의 모습을 그린 적이 있다. 그것은 불안과 걱정에 대한 극복이었고, 고양이는 주인공이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이끌어 준 장본인이었다. 나의 글에 있어서 고양이는 그런 의미를 갖는 것이다.

가끔 고양이처럼 달려보곤 한다. 어떤 특정한 자세로 달리는 것이 아니라, '고양이처럼'이라는 느낌을 가지고 달리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귓가를 스치는 바람의 흐름 속에서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오고, 그렇게 되면 어떤 두려움과 걱정이 있다해도 나는 현실로 되돌아올 수 있게 된다. 고양이는 어떤 형태로든지 내게 현실을 잊지 않도록 그에 적응시켜주는 존재인 것이다.


1) 태엽감는 새(무라카미 하루키 作)에 등장하는 고양이의 이름

(1998년, Written by bluemoon. 1999년 수정.)



[ 추억... 되살리기 ]

방구석에 처박힌 내 앨범의 맨 마지막을 보면, 어렸을 때부터 찍어놓은 증명 사진이 차례대로 붙어있다. 그래서, 우연히라도 앨범을 보게 될 때면 늘 그 사진들을 보게되고, 그 덕분에 언제나 미소를 띄운 채 앨범을 덮을 수 있다.

오늘도 앨범을 다시 보게 되었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그 증명 사진들을 보게 되었다. 하지만 이번의 느낌이 전과는 다르다고 생각되는 건 왜일까? 맨 처음에 붙어있는 흑백의 사진, 말 그대로 바가지 머리에다가 볼살이 통통한 어린 애를 본 것 뿐인데......

내가 다섯 살 때까지 살았던 남제주군 남원읍 태흥리에 대한 기억들이 되살아난다. 얼핏 생각하기엔 무엇이 생각나겠느냐는 말도 나올 것 같지만, 내가 그때를 그리워하는 만큼의 기억들이 아직 내 맘 속엔 살아있고, 그래서 그 때의 추억들이 되살아나는 것을, 지금은 막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 추억들이 잊혀지기 전에 여기에, 대강이나마 적어 두려 한다. 내 자신이 '제주시'라는 도시와 '어른'이라는 인격에 완전히 녹아 들어가기 전에, 10여년도 더 된 내 진정한 추억이라는 것을 남겨두려고 한다. 앨범 속 사진들처럼 기억들을 찍어 이 글 속에 담아두는 작업, 이것이 내가 이 글에 부여하려는 가장 큰 의미이다.

*

내 아름다운 고향 태흥리의 수많은 모습들이 차례대로 생각난다. 인적이 드물어 행인을 볼 수도 없고, 혹 지나가는 자동차들이 있다해도 그 모습이 파도에 휩쓸려 구름으로 되돌아오는 내 마음 속 작은 세계...

*

가끔씩, 걸어서 읍사무소까지 갔었던 일들이 생각난다. 지금이라면 십 오, 륙 분이면 족히 도착할 수 있겠지만, 그 때의 내 짧은 다리로는 한 시간이나 걸리는 긴 여행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곳에 가면, 평소엔 접할 수 없었던 많은 일들을 접할 수 있었다. 부모님 몰래 읍 구석의 미로 같은 길들을 지나, 그곳에 쳐 박혀져 있던 오락실에 들어가 50원 짜리 오락을 즐기던 일들,- 그 때 정말 열심이었지. 50원이 아까워, 혹은 없어서 구경만 하다가 주인 아저씨(? - 아주머니였는지도 모른다.)께 쫓겨나는 일도 다반사였고, 오락하다가 지치면(?) 샛아빠께서 운영하시던 중국집에 가서 자장면(이게 표준어이지만 좀 어색하군... 짜장면)을 공짜로 먹던 일들 - 지금 그 오락실은, 없어졌는지 길이 복잡해서인지 다시 찾을 수가 없고, 중국집은 잔인하게 말해서 망하고 없다. - 하지만 내가 읍까지 나갔던 가장 큰 이유는 읍사무소 앞에 담 대신 박혀있는 큰 돌들 때문이었다. 그 위에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도 보고, 새우깡 봉지 하나 들고 하루 종일 보내던 그 곳-아직도 그 돌들은 그 자리에 박혀 있지만, 지금보기엔 작기만 하더군.

그 때 우리 집에서 조금만 내려가면, 지금도 그 곳에 있는 고모 댁이 있었고, 좀 더 가면 곧바로 보였던 바다. 바다를 굉장히 좋아했었다는 생각이 든다. 해수욕장은 아니었다. 아니, 아예 모래사장조차도 없었다. 하지만 학교 교실의 사분지 일만한 해녀 대합실에서 수영복(이랄 것도 없었던 것 같지만)으로 갈아입고 나서, 누나들과 수영을 한다며 고기를 잡는다며 날뛰다가 수도 없이 다치기도 했던 그 여름날의 바다가 그때는 왜 그리도 즐거웠었는지. - 지금 그 해녀 대합실은, 들어가서 확인은 못해봤지만 창고 같은 게 되어있는 듯 하다.

모두들 유아원이라고 부르던, 마을 회관의 탁아소 같은 곳에서의 일들이 생각난다. 노래를 틀어놓고 율동을 배우다 보면, 가끔은 엄마가 삶은 달걀을 많이 가지고 오시곤 했다. 그 때마다 노른자는 맛이 없다면 몰래 버렸던 내가, 흰자는 그렇게도 좋았는지 많이도 먹었었지. - 하지만, 지금은 웬일인지 노른자를 더 좋아한다 - 또, 간식을 먹은 후면 있었던, 마치 큰 행사처럼 여겨졌던 '낮잠 시간'. 그 때는 정말 그 시간이 싫었다. 그래서, 친구들과 함께 빠져 나온답시고 문 옆에 숨어 있다가, 선생님께 들켜 이불 속으로 다시 들어갈 수밖에 없었던 일도 수 차례나 되었다. - 이제, 1층 짜리었던 회관은 3층으로 높아졌고, 그 정문 앞에는 회관 건축에 기부금을 낸 이들의 이름이 '자랑스럽게' 조각되어 있다.

그 시절에 사귀었던 친구들도 생각난다. 비록 그 겉모습과 이름들은 모두 잊혀졌지만, 그 중에 가장 생각나는 애들을 늘어놓자면... 우리 집 옆에는 이발소가 있었는데, 제일 먼저 그 이발소 집 아이와 가장 친했었다는 생각이 든다. 같이 블록 쌓기 놀이를 했던 어느 날이 기억나는데, 아마 그 때가 태흥리를 떠나기 바로 전날이었던 것 같다. 비록 그 때는 떠난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채 평소처럼 놀았었지만. - 지금, 그 이발소 자리는 위에서 말한 마을 회관이 차지하고 있고, 그 친구의 이름은 이젠 알 길이 없다. - 또 한 명의 친구, 아마 여자애였던 것 같은데, 그 애의 집에는 돼지가 많았다. 그래서 긴 나무 가지를 꺽어다가 돼지 꼬리를 때리며 놀곤 했었다. 그리고 내가 정확하게 기억하는 일은, 내가 떠나던 바로 그날, 그 애의 집에 놀러 갔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 애를 만날 수는 없었고, 지금은 아예 그 애의 집으로 통하던 흙길조차도 사라지고 없다.

엄마가 밀감밭(... 미깡밭)에 나가시며 과자 한 봉지를 사주시면, 그 과자를 먹으며 온 동네를 헤집고 다녔던 일이 생각난다. 난 긴 빨대 안에 과일 맛이 나는 가루가 들어 있는 '불량 식품'을 무척이나 좋아했었다. 그래서 붓꽃이 피는 계절이 끝나갈 쯤이면 그 빨대 과자를 쪽쪽 빨면서 붓꽃의 검은 씨를 따서 아무런 목적도 없이 주머니에 가득 채우고 다녔었다. 지금은 그 많던 붓꽃들이 시멘트 담같이 주머니에 담을 수 없는 것들을 짓느라 눈에 띌 만큼 줄어, 그 씨를 주머니 가득 담고 다니기엔 따기가 아까울 정도가 되었다.

밀감밭(아- 미깡밭!)에 따라가, 도움도 안 되면서 리어카 뒤만 졸졸 따라다니던 일이 생각난다. 리어카를 타는 것은 정말 재미있었지만, 계속 타기만 하면 미안하니까 가끔은 약한 내 힘으로 그 뒤를 밀기도 했었다. 그러다가도 타라는 말만 나오면 좋아라고 올라탔었지. 그것도 염치없게 금방 딴 '미깡'을 맛있게 먹으며... 밭 입구에 나 있는 돌담 옆으로는 수수(난 아직도 이것의 정확한 명칭을 모른다. 보통, 모두들 알고 있는 '수수'가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지만)라는 게 심어져 있었다. 그래서 오다가다 그것을 하나씩 뽑은 후에, 꺽어서 그 부러진 자리를 보면 설탕물 비슷한 단물이 나오는데, 그 단물을 질릴 때까지 핥아 먹었던 일도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아, 그리고 담도 없는 옆집에는 아주 친절(기억이 잘 안 나서 '친절'이란 단어로 밖에는 표현을 할 수 가 없다)하신 할머니께서 살고 계셨다는 게 생각난다. 옛날엔 매일같이 찾아가 그 분 무릎에 앉아서 놀곤 했었지. 그 무릎 위의 따뜻함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하지만 국민학교(초등학교가 '절대' 아님) 3학년 땐가 4학년 땐가 태흥리로 처음 되돌아가서, 할머니 댁의 문 앞에서 '할머니, 경보 왔어요!'를 외쳤을 땐, 아무런 대답도 들을 수 없었고, 대신 썰렁한 기운만을 느낄 수 있었다. - 지금 그 집은 오토바이만한 잡종개 한 마리가 지키고 있는데, 난 그 개가 무서운 건지 흘러간 시간이 무서운 건지 또다시 '할머니'를 부르지 못했다.

*

내가 보냈던 '인생 초기의 5년'의 내용은 대충 이 정도이다. 그땐 떠난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채 떠나왔고, 이젠 그 장소만 있고 추억의 잔해는 없는 태흥리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난 이 몇 안 되는 추억의 이야기들이 전혀 꾸밈없는 사실이라고 보장하고 싶어, 앨범 속 사진처럼 이 글 속에 꼽아 두려는 것뿐이다.

후에, 먼 훗날에, 난 다시 태흥리로 돌아가려 한다. 현실적으로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어른'이라는 게 되고 나서 '먹고 살 일'에 걱정이 없어지면, 아무런 미련 없이 도시를 떠나 내 추억 속의 장소로 되돌아가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슬픈 것은, 그 사진 속의 일들이 이젠 사진 속만의 것일 뿐, 다시는 접할 수 없는 일들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이미 태흥리가 변한 것처럼, 나도 변했기 때문이다. 이젠 50원짜리 오락과 공짜 짜장면도, 읍사무소 앞의 큰 돌들도, 해녀 대합실도, 그 옛날의 마을 회관과 유아원도, 이름 모를 어릴 적 친구들도, 빨대 과자와 붓꽃 씨도, 맛있는 수수도, 옆집 할머니도 모두 유일하게 변하지 않은 태흥리의 파도에 휩쓸려 갔나보다. 그래서 이렇게 슬픈 것이겠지.

하지만, 생각이 나고 또 나는 내 어린 5년간의 추억은, 그 슬픔이 커 갈수록 점점 더 소중해 질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 태흥이여! 내 소중한 어린 시절의 추억들이여!

(1997년, Written by bluemoon. 무수정.)



[ 억 새 ]

달빛이 질러 놓은
하이얀 불길에
활활히 타오르는
서글픈 기다림

말도 없이 떠나신 님
무어가 그리운지
애절함도 버슬버슬
전설로 헤어지고

기다리다 지쳐 쓰러져 버린
여인의 하얀 비녀 위로
이제는 달빛도
밤구름에 가리워진다.

(1997년, Written by bluemoon.)




Copyright © 2000- . END LINE WEB SITE all right reserved, some pages are excepted.